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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미 논술] 한양대 2011학년도 모의 논술 변형 문제(2019학년도 대비용)

경미쌤😍 2018. 4. 3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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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논술 강사 조경미입니다^^


이번엔 한양대 문제를 한 번 풀어봅시다.





참고로, 한양대는 2019학년도에도 수능 최저 등급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봅시다.


일부러 노리고 그런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어벤져스 보고 난 지난 주에 강의 자료 중 이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근데 학생들이 생각보다 잘 풀어내지는 못하더라고요..


주제가 좀 재밌어서 잘 풀 줄 알았는데..ㅠㅠㅠ


그럼, 헐크가 만약 현실에서였다면 처했을 가상 상황을 문제로 다루어 봅니다.


헐크는 도시를 파괴하는 괴물이었죠??


그치만 도시를 파괴하는 동안 브루스 배너는 자신이 헐크로 변했는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문제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헐크와 배너는 같은 인물'이 아니므로 '개인의 동일성'이 유지되지 않으니 '무죄'라오..


라고 변호하기를 요합니다.


다만 형식이 '변호사의 말(주장)->검사의 말(반론)->변호사가 다시 검사의 말 반박(재반론)'의 구조를 취하도록 정해져 있어요.


원래 출제되던 때는 1400자 내외의 분량이었지만,


우리는 2019학년도 시험 대비를 위해 1200자 내외로 변형해서 풀어봅니다.


제시문 잘 읽고, 대체 어떤 부분에서 브루스 배너를 무죄로 만들 수 있는지


검사의 말을 조목조목 비판해 보세요.


해설과 예시 답안은 맨 아래에 첨부할게요^-^ 합격하세요. 뿅!



[문제] 제시문 ()()를 참고하여 변호사와 검사는 각각 개인의 동일성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는지 비교하고, ‘개인의 동일성에 대한 검사의 의견을 반박하여 브루스 배너의 무죄를 변론하시오. (1200자 내외, 한양대 2011 모의)

()

존경하는 재판관님, 도심의 번화가를 미친 듯이 휘젓고 다니며 자동차와 건물을 파괴한 자는 온몸이 푸르스름하고 덩치가 엄청나게 큰 자입니다. 그러나 저의 의뢰인 브루스 배너는 보시다시피 흰 살결에 몸집이 작은 남자입니다. 결단코 제 의뢰인은 몇 주 전 도심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자와 동일 인물이 아닙니다. 브루스 배너가 어쩌다가 헐크라는 인물로 변했다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 점은 인정합니다만, 문제의 행위가 저질러지는 동안 현장에 있던 사람은 브루스 배너가 아니라 헐크라는 인물입니다. 벌건 대낮에 많은 시민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했던 덩치 큰 괴물은 그 어떠한 기준에서 보았을 때도 체중과 신장, 그리고 피부색에서 볼 때 지금 제 옆에 있는 이 소심해 보이는 남자와 그 어떤 유사성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검사가 누군가를 이 법정에 세우고자 한다면 헐크를 잡아와야 합니다.

또한 여기서 제가 푸른색 괴물과 제 의뢰인이 동일 인물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외양의 차이를 기준으로 양자가 동일인이 아님을 주장하거나 브루스는 모닝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도저히 같은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할 때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둘 사이의 연관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누군가를 하나의 개인으로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은 이름과 소속을 묻거나 신분증명서의 사진을 통해 동일인임을 확인하는 과정을 포함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재판관님은 재판에 앞서 피고에게 당신이 브루스 배너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피의자의 신분을 확인을 하셨습니다.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 브루스 배너의 확신을 가능하게 한 것은 브루스 자신의 신분증과 이름에 각인되어 있는 그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 맺음과 그것을 인정해온 우리 사회의 법적·문화적 제도, 혹은 관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른 사람이 우리를 동일 인물이라고 여기면서 지속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적 가치입니다. 그는 신분증에 의해서 법적으로 브루스 배너로 인정받지만 그의 가족과 친구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를 헐크와는 다른 브루스 배너라고 인정하고 그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족, 이웃, 공동체라는 각각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평소 우리가 함께 차를 마시고 인사를 건네던 브루스 배너와 도심을 일순간 혼란에 빠트린 푸른색 괴물을 동일 인물로 인정할 그 어떤 인과관계와 연속성도 찾을 수 없습니다.

 

()

존경하는 재판관님, 무엇보다 의뢰인의 변호사가 말한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재판을 바라보았을 때도 브루스 배너가 이 법정에 서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유순해 보이는 브루스 배너 씨가 솔기가 터져버린 누더기를 걸친 근육질의 괴물과 달라 보이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개인의 동일성을 입증하는데 신체적 연속성은 일정정도만 있어도 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배 한척을 사들여 푸른 바람이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몇 년 지나 배에 수리할 곳이 생겨 갑판과 용골을 새것으로 바꾸었고, 많은 시간이 흘러 배의 거의 모든 부품을 새것으로 바꾸었다면, 그래도 이 배는 여전히 푸른 바람일 수 있을까요? 우리의 직관은 그렇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브루스 배너가 과거에 자주 접속하던 인터넷 게시판에 발을 끊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전화번호를 바꾸고 혹은 성형수술을 받는다고 해서 브루스 배너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분명히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폭력성을 표출하는 헐크의 정신이 온전한 사고를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베티 로스를 비롯한 몇몇 친구를 여전히 알아보며 이들을 지켜주려는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증인으로 출석한 베티 로스, 데이비드 배너, 로스 장군, 그 밖의 사람도 헐크와 브루스 배너가 동일 인물인 것처럼 대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아마 이들은 브루스의 몸이 헐크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헐크의 마음속에 그들이 아는 브루스의 특징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음을 느껴서 이런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헐크가 다른 사람과 맺고자 하는 관계는 본질적으로 브루스 배너가 그전에 맺어놓은 관계의 연속선에 있습니다. 마치 헐크 몸속에 배너가 갇혀 있는 것처럼, 적어도 배너의 정신과 기억은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푸른색 피부와 근육질의 거대한 몸집을 지닌 괴물을 여전히 브루스 배너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시간이 흘러도 지속하는 개인의 동일성을 가능케 하는 기본적 조건으로서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이 진정 생각하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시간이 지나도 개인이 연속성을 지니는 것은, 과거에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존재임을 인식했고 기억을 통해 이런 사실을 반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헐크에게서 주변 환경이나 사람들에게 심한 혼란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빈번히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동시에 브루스 배너의 삶에 구현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합니다. 예를 들면 브루스는 아버지 데이비드 배너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베티 로스를 없애기 위한 행동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즉각적으로 베티를 보호하고 아버지의 계획을 좌절시킬 결심을 합니다. 이 결심은 흥미롭게도 헐크에 의해 구체적 실행에 옮겨집니다. 따라서 과거의 기억과 이 기억을 통해 실제 일어나는 것 사이의 인과관계는 명백히 과거의 일을 경험한 자와 현재 그 기억을 떠올리는 자 사이의 연속성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자기성찰과 반성적 사고는 브루스 배너와 헐크 사이의 부인할 수 없는 연결고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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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답안>

브루스 배너는 가끔 푸른색 괴물 헐크로 변해 도시를 파괴하는 등의 피해를 입히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이때 ()의 변호사는 브루스 배너가 무죄라고, ()의 검사는 헐크의 범죄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른 이유는 개인의 동일성을 어떤 기준에서 파악하는가에 따른다. 변호사는 백인인 배너와 푸른색 피부에 덩치가 큰 헐크가 외모나 형태상의 특징이 전혀 같은 곳이 없기 때문에 다른 인물이라고 본다. 이처럼 변호사는 외모의 동일성이 없기 때문에, 헐크와 배너 사이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가 이루어지는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배너가 지인들과 맺은 관계가 헐크에게 연속되지 않았다는 점도 둘이 동일인이 아닌 근거가 된다. , 변호사는 개인의 동일성이 외형상의 특징이나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의 타인과 맺는 관계, 그리고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신분증 등을 통해 확립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달리 검사는 헐크와 배너의 외모에 차이가 있더라도 둘 사이의 연속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검사는 외모가 변했다고 해서 내면까지 변하는 것은 아니며, 헐크가 불완전하지만 배너일 때의 기억에 의존해 지인들의 안전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는 점을 근거로 헐크와 배너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음을 주장한다. 게다가 배너는 헐크의 파괴적 행위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헐크의 잘못을 배너가 느끼고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배너는 아버지와의 전화통화를 통해서 베티의 위험을 인지했고, 헐크는 위험에 빠진 베티를 구했다. , 배너는 헐크와 정신적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검사의 의견은 타당하지 않다. 여러 번 수리한 배의 예를 들어 개인의 동일성을 보장하는 연속성이 부분적이어도 된다고 보는데, 이는 모호한 근거이다. 만약 배의 부품 하나를 가지고 새로운 배를 만든다면, 그 배는 예전의 배가 아니다. , 부분적 연속성이 과도하게 작다면, 전후의 사람을 동일인으로 주장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배너가 헐크의 잘못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는데, 무죄인 사람도 범죄자로 잡아 법정에 앉혀 여러 차례 죄인취급을 하면 위축감에 죄책감을 느끼는 행위를 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베티를 구한 행위가 배너의 의지라기보다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연민과 약자에 대한 의협심이라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러므로 헐크와 브루스 배너가 동일인이라는 검사의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따라서 배너가 헐크의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1248)



- 해설 -


제시된 두 지문은 가끔씩 푸른색 괴물 헐크로 변하는 브루스 배너가 법정에 선 가상적 상황을 배경으로 배너에게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변호사의 견해(지문 가)와 배너가 헐크의 파괴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검사의 견해(지문 나)를 대비하여 제시하고 있다. 변호사와 검사는 자신의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개인의 동일성에 대하여 다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개인의 동일성 판단에 대한 변호사의 생각은 두 기준에 근거한다. 우선 변호사는 배너와 헐크가 형태상의 특징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푸른색 피부에 몸집이 엄청나게 큰 헐크와 하얀 피부에 몸집이 자그마한 배너는 체격조건이나 전체적인 인상처럼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람들을 구별하는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너무나 다르기에 동일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변호사도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헐크와 배너가 서로 교차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너무나 다른 외형을 가진 두 사람을 동일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보다는 행위의 당사자인 헐크를 법정에 출두시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지적한다.

 

다음으로 변호사는 우리가 특정 개인을 동일인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관계망에 근거한 기준에 입각해서도 배너와 헐크가 동일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배너는 자신이 브루스 배너라고 재판정에서 엄숙하게 인정했고 이는 가상적으로 헐크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상황이다. 게다가 배너가 자신의 친구나 동료와 맺고 있는 여러 사회적 관계들은 헐크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거나 적어도 동일한 방식으로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 요약하자면 변호사는 개인의 동일성이 외형상의 특징이나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의 타인과 맺는 관계, 그리고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신분증 등을 통해 확립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검사는 변호사가 주장하는 헐크와 배너의 직관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의 모종의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검사는 여러 번 수리를 거쳐도 여전히 동일한 배로 간주하는 상황이나 배너의 취향이나 행동 패턴이 바뀌어서 외부에서 관찰이 가능한 연속성이 일부 깨어지는 상황에도 여전히 동일인물로 간주될 것이라는 점을 우선 지적한다. 그런 후 검사는 헐크가 비록 불완전하지만 배너의 몸일 때의 친구를 기억하고 그들의 안전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로부터 헐크와 배너 사이에는 부분적 연속성이 존재하고 이 연속성에 근거하여 두 사람을 동일인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재미있는 점은 변호사가 주로 배너와 헐크의 외면상의 차이점에 주목하는 반면, 검사는 내면상의 연속성에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 검사는 배너와 헐크가 외면상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기억과 같은 정신적 속성이 부분적으로 공유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신적 연속성을 강조하는 검사의 전략은 배너의 자기성찰적 모습에 대한 그의 지적에도 잘 드러난다. 배너는 자신이 어떻게 헐크로 변해서 그렇게 파괴적인 행위를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검사가 보기에 이는 배너가 헐크를 자신과 동일한 인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결정적 근거이다. 특히, 배너는 아버지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자신의 친구 베티가 위험에 처한 사실을 깨닫고 그녀를 구해야겠다고 결심하는데, 이는 결국 배너가 아닌 헐크에 의해 실행에 옮겨진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정합적인 방식으로 수행하는 반성적 과정은 동일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검사가 보기에 배너와 헐크는 분명히 같은 사람인 것이다.

 

검사가 배너를 헐크와 동일인물로 규정하기 위해 제시한 여러 근거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타당하지 않다. 우선 검사는 여러 번 수리한 배나 취향이 바뀐 배너의 예를 들어 개인의 동일성을 보장해주는 연속성이 완전할 필요는 없고 부분적이기만 해도 된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부분적 연속성이 개인의 동일성을 보장하기 위해 어느 정도로 유지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예를 들어, 검사의 푸른 바람이 난파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남은 것은 오직 창문 틀 하나와 갑판에 사용된 못 하나였다고 하자. 그리고 새 배를 건조할 때 그 둘을 살짝 끼워 넣은 다음 이 배를 다시 푸른 바람이라고 명명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과연 그 배가 원래의 푸른 바람과 동일한 배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물론 원래의 배를 기리기 위해 상징적으로 마치 동일한 배인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에조차 서로 다른 두 배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 점은 검사가 강조하는 부분적연속성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을 경우에는 그것에 호소해서 개인의 동일성을 주장할 수 없음을 함축한다. 헐크와 배너의 분명한 차이점에 대한 변호사의 주장을 검사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헐크와 배너를 동일 인물로 간주할 수 없는 좋은 근거가 된다.

 

다음으로 자기성찰성이나 반성능력에 기초한 개인의 동일성 기준에 대해 생각해보자. 불행한 일이지만 최근 평균수명이 늘면서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과거 행위에 대한 기억을 잃거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통제 능력을 상실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흔히 치매로 알려진 현상의 특징은 기억의 연속성이나 자기성찰성을 갖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형태적이나 사회적으로 인식이 가능한 방식으로 동일인(예를 들어, A의 아버지이며 최근까지 B회사에 근무했던 C)임을 보장받는다는 사실이다. 이때 검사의 기준을 강요한다면 지나치게 강한 동일성 조건을 요구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공인된 개인적 동일성을 부정하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게다가 설사 검사의 조건이 개인의 동일성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인정하더라도 배너와 헐크 사이에 법적 책임과 관련된 동일성이 성립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중인격자의 경우 다중 인격을 구성하는 개별 인격끼리는 대부분 기억을 공유하지 않지만 설사 기억을 일부 공유하는 상황에서도 개별 인격들이 서로 상대방의 행위에 대해 인과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이 경우 개별 인격을 가로질러 법적 책임이 전이되지는 않는다. , 개별 인격 A가 수행한 범법행위를 다른 개별 인격 B가 부분적으로 기억하고 있더라도 적어도 그 범법행위 상황에서 인격 B가 인격 A를 제지할 수 없었다는 점이 분명하면 인격 A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인격 B에게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배너와 헐크의 경우는 다중인격의 경우보다 더욱 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개인의 동일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변호사가 강조했듯이 배너와 헐크는 외형상으로 매우 다르며, 이는 적어도 육체적으로 동일한 외형을 보이는 다중인격의 경우보다 동일성 주장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배너는 헐크의 행위를 제지할 아무런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헐크가 무슨 일을 했는지조차 막연한 기억보다는 신문기사나 찢어진 옷 등을 통한 추론인 경우가 더 많다. 이는 배너와 헐크를 잇는 기억이 검사가 주장하듯 내재적이기보다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일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요약하자면 헐크의 파괴적 행위에 대해 아무런 인과적 개입능력을 갖지 못했던 배너에게 사회적으로 구성된 동일성의 조건을 억지로 끼워 맞추어 법적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검사의 주장은 성립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베티를 보호하려는 배너의 계획을 헐크가 실행에 옮겼다는 사실 자체는 두 사람의 동일성 주장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태여 동일인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의 계획을 인지하고 그에 공감하여 그 계획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일은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사회적 협동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할 때 헐크와 브루스 배너가 동일인이라는 검사의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따라서 배너가 헐크의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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