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TORY

내 강아지들 이야기

경미쌤😍 2019. 8. 27. 15:56

세상 모든 개들은 다 예쁘다

그치만 우리 집 개님들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D

 

 

학대받던 유기견이었던 나나는

우리와 함께 지낸지 10년이 넘도록 지금도 밥 먹는 게 허겁지겁 전투적이다.


방치된 애를 박스에 담아 구조해온 사람의 말로는

계단에서 던져진 적도 있고

냉동실에 얼려진 적도 있다더니,

우리 나나는 지금껏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한다.


 당연히 식이장애도 있을 수밖에.

물론 이제는 늙어서 먹는 속도가 조금 느려졌고

켁켁 사레들려서 먹다 뱉고 다시 먹을 때는 좀 천천히 먹기는 하지만..

혹시 아직도 넌 또 굶을까봐 걱정하는 거니 싶어서

밥먹는 거 물끄러미 보다가 또 짠해진다.


실은 슈나우저가 지랄견이라 할 때 전혀 공감할 수 없었던 이유가 나나 때문이었다.

나나는 단 한번도 보채거나 지랄맞은 행동을 한 적 없던 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나가 낳은 아툼과 몽이도 아마 지랄맞은 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에너지는 넘쳤지만 미운짓은 안했어.


어쨌든 나나는 우리에게 오기 전

욕구가 충족되기 어려운 환경에서 힘겹게 버텨냈던 경험 때문인지,

 애교 넘치고 귀여운 행동보다는 덤덤한 사람처럼 참 무던하다.

가난한 환경에서 미리 철든 어린이처럼.

우리 개르신 조금 아프더라도 덜 아프고 오래 사슈..


내가 살다살다 개모차를 사서 끌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개모차가 쓸모 없어지는 날이 오지 않기를.

 




담비 역시 처음엔 허겁지겁 숨도 쉬지 않고 사료를 흡입했다.

지금은 항시 밥그릇에 사료가 있고

간식도 원할 때면 먹을 수 있으니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습관처럼 자기 밥을 먹다가도 꼭 나나 밥그릇에 한번씩 기웃거린다.

그러다 둘이 대판 싸우기도ㅋㅋ


물론 같이 사는 기간이 좀 되다보니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번씩은 제 몫보다 많이 먹고 꿀렁거리다 사료를 그대로 토해서

 궁뎅이 투닥일 때도 종종 있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3.5키로짜리가 지금은 6키로 됐으니..ㅋㅋ

조금 먹이면 더 작고 귀여웠겠지만

슈나우저는 원래 근육질이니까 에라이 그냥 너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라!

 100년을 더 먹을 수 있겠냐 1000년을 더 먹을 수 있겠냐.. 먹을 수 있을 때 맘껏 먹어!

..이런 마음이다.


헤..울 담비 새로운 몸줄을 하고 기분 좋아하던 날이다.



차우는 덤덤하다.

원래 1m도 안되는 줄에 5년을 넘게 묶여 있었으니

주변 사람에 대한 관심이며

계절 변화에 대한 관심이며.. 그런 게 없다. 없었다.

간식을 줘도 덤덤~ 달려드는 법이 없었고

쓰다듬어줘도 흠칫. 놀라고는 가만히 있지 꼬리 흔드는 법도 별로 없었다.


1년의 시간 동안

항시 산책시켜주는 뽀빠이에게 꼬리를 흔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빠 퇴근하는 무렵 차가 보이면 짖는다.

그리고 아빠 목소리가 들리면 짖는다.


내가 간식을 주면 이제는 앞발 들고 반길 줄도 안다.

오돌이랑 오설이만 간식 주면 컹컹 짖으며 존재감을 뽐낼 줄도 안다.


개에게 먹고 자고 싸는 본능 말고도

사랑받고, 애정표현하는 본능도 있고,

질투하는 성격도 있다는 걸 차우를 보며 알게 됐다.


 

오돌이와 오설이도 유기견 공고 기간 중 입양했지만,

1~2개월된 강아지일 때 데려왔기 때문에 식이장애가 전혀 없다.

간식도 먹다가 먹기 싫으면 뱉을 줄도 알고,

사료도 먹다가 남겨두더니 나중에 또 먹기도 한다.


오돌이랑 오설이는 자율배식이 가능한 데다

자기 밥그릇도 확실히 알고 있으니 먹을 거로 싸울 일도 없다.

한여름 더운 날 둘이 좁아보이는 한 집에 같이 들어가 자면서도,

향은 달라서 각자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은 대로 먹는다.

심지어 최근엔 편식도 한다.

똥강아지들..

오리 날개랑 목뼈 후기 댓글이 좋아서 샀는데 오설이가 잘 안먹는다..

오돌이는 주는 대로 다 받아다가 쌓아두고 먹고 싶을 때 오독오독 먹고 있고..

누굴 닮았는지 편식쟁이들이다.

그런데 이것조차 예쁘게 보이는 내 눈도 참.



우리 오설이는 정말 하얗다..

할아버지가 산책나왔다 줄을 놓친 소만큼 큰 개가 언니 쫓아오니까

나와 같이 뛰다가 뒤돌아서 그 개랑 싸우던 용맹함도 있어 든든했지만..

너 다쳤음 그 개새x 담글 물끓였어... 


어쨌든 우리 집 개들의 이런 식습관을 보면서,

유기 상태의 배고픔을 견디는 습관 때문에 식이 장애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 일단 먹고 보자.

배 터지기 직전까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어보자는 본능이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결핍의 경험이 없었다면 문제 행동은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파양이나 또 다른 유기로 이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가끔 담비가 문제 행동이 없었다면 세 다리를 건너 우리 집까지 오지 못했을 테니,

똥강아지 미운짓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산책도 마찬가지이다.

담비는 어려서부터 산책 경험이 없었는지 목줄로 통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달려나가는 본능만 있다.

문만 열리면 그냥 앞만 보고 달려간다.

뒤에 목줄을 잡은 사람이 있어도 아무 생각이 없고

 심지어 차가 지나가도 겁이 없다.

그래서 일단 차가 보이면 품에 안아야 한다.


게다가 목줄을 할 때도 으르렁, 목줄을 풀 때도 으르렁.

그래서 몸줄로 바꿨는데 그래도 으르렁.

간식으로 반복 훈련을 해도 여전히 으르렁.

똥강아지 같으니..


물어도 예쁘고 으르렁거려도 뭐.. 성질 없는 개 매력없지.

 

그런데 오돌이랑 오설이는 작은 강아지일 때부터 둘이 같이 산책나가는 습관이 들어서

누구 하나 놓고 가면 애가 타는 소리를 내며 같이 가자고 낑낑댄다.

둘이 합쳐 30키로가 넘는다는 걸 얘네는 모른다.

솔직히 엄빠는 힘들다는데 나는 뭐.. 똥조차도 예쁘고 똥싸는 모습까지도 예쁜데 뭔들~


애들을 힘으로 당기려 하면 힘들지만,

가고 싶은 길로 가게 내버려두면 목줄 잡은 팔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곳곳에 온 동네 똥개들 흔적 확인하며

각자 보고 싶은 것 보고 냄새맡고 싶은 곳 냄새맡고 다시 길 가운데로 돌아오니까.


그리고 치사뿡들. 산책 나가면 내가 불러도 나한테는 잘 안 온다.

언니가 불러서 가면 집에 들어가자고 할 때가 많아서 그런가..

산책 나가면 간식도 관심없고

그저 길가에 나는 모르는 생명체들과 인사하느라 바쁜 개 둘이다.

 

사실 시골에 오면 목줄 풀고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야생동물과 들개 때문에 우리 아이들 보호하느라

일단 생소한 얼굴이 보이면 냅다 도망치는 건 나였고,

여름엔 진드기랑 벌레 때문에 풀밭 산책은 절대 불가능이며,

겨울엔 얼음 언 곳에서 발가락이나 발바닥 쿠션 찢어지거나 논밟고 털 더러워지고 추울까봐..


여러 가지 이유로 피하느라..

결국 여기서도 산책할 때는 아스팔트와 시멘트 바닥을 자주 밟게 된다.

그래도 가끔 흙바닥 좀 밟고 풀에 스친 바깥공기 맡으며 다닐 수 있으니까 그거라도 감사해야 할까.

 

며칠에 걸쳐 메모장에 내 강아지들을 생각하며 글을 썼다.

나중에 언젠가 또 보고 싶어지면 생각할 거리들을 남겨놔야지..싶어서.

매달 이런 저런 약값에 밥값에 간식에,가끔은 병원비에 수십만원씩 쓰면서도,

돈으로 살 수 없는 추억을 나눠주는 존재의 가치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실은, 개들과 함께 하는 삶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이별하고도, 또 다시 그 이별을 알면서도

또 다시 내 시간보다 빠른 시간을 사는 아이들을 식구로 맞을 용기가 생길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식구가 늘어날 줄도 몰랐고.

이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많이 사랑하고 웃고 울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려 노력할 줄도 몰랐다.


어차피 인생 아무도 모르는 것.

또 인연이 닿는다면 마다하지 않고 아낌없이 주고 살리라 다짐해본다..

그리고 간절히 바란다.

얘네들의 시작은 유기견이었지만,

우리 식구와 함께 하는 시간은 행복하고 행복했기를.



엊그제는 꽃이 참 예뻤다.

한강으로 긴 산책 자주 나갔던 몽이랑 아툼에게도

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툼과 몽. 항상 나와 함께하고 그분 곁에서 함께 하기를.

 

..보고싶어 죽겠는데 볼 수 없는 녀석들이라 아직도 아린다. 겪어보니 그리움의 끝은 없더라.

728x90

'M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계 병아리 탄생 :D  (0) 2019.09.02
장미랑 찔레랑 무화과랑  (0) 2019.08.28
빨간 우체통 어디갔어...  (0) 2019.08.16
일제강점기를 벗어나는 중..  (0) 2019.08.05
고라니의 죽음  (0) 2019.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