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 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네 그 속에서

하늘하늘한 팬티 한 장 어머니

볼에 문질러보네 안감이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무늬였음을

오늘은 그 적멸이 내 볼에 어리네

어머니 몸소 세월로 증명했듯

삶은,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순간이었네

사람들이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팬티들은 싱싱했네

웬만해선 팬티 속 이 꽃들은 시들지

않았네

빨래줄에 하나씩 열리는 팬티들로 뜬 눈송이 몇 점 다가와 물드네

쪼글쪼글한 꽃 속에서 꽃물이 똑똑

떨어지네

눈덩이만 한 나프탈렌들과 함께

일생을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된 팬티 한 장

푸르스름한 살 냄새 속으로

그 드물고 정하다는, 햇볕이 포근히

엉겨 붙나니

 

- 김경주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사실 우리나라의 문학적 환경에서 ‘팬티’는 도발적인 단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의 팬티는 여성에 대한 은밀하고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다만 자신과 상관없는 여성의 팬티라면 그런 상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엄마의 팬티라면 이야기가 다를 것입니다. 김경주 시인은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을 가진 시인’이라고 평가받으며 2003년 등단한 작가인데, 우리 문학에서 금기시하는 그 소재를 과감하게 활용하여 시를 썼습니다. 읽어보니 어떤가요?

 

김경주 시인은 한때 자폐증을 앓았고,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았던 어머니에게 바치는 시를 모아 시집을 출간할 때 이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표현으로요. 시인은 노모의 팬티를 개키다가 늙은 엄마의 팬티가 꽃무늬인 것을 보고 엄마도 여성이었다는 것을 상기합니다. 즉, 엄마도 여성이고 싶었겠지만, 엄마였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누르고 살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여성의 젊음이 사그라져 가는 늙은 어머니의 모습과는 다르게 팬티에 새겨진 선명한 꽃무늬를 보고 새삼 서글퍼졌을 것입니다.

 

..젠더 이슈를 정리하며 학생들에게 줄 자료를 제작하면서 이 작품을 읽어보게 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