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유치원’ 개그의 정치적 함의
신동아|입력 2011.12.2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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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빨리 크는 유치원, 사마귀유치원이에요. 먼저 사회에서 배워보는 영어 시간이에요. 오늘은 숫자 2를 배워볼 텐데. 숫자 2는 영어로 투(two)~투(two). 투(two), 투(two), 투(two)~. (호주머니에서 휴대전화 꺼내 전화를 받음) 어 나경아. 나도 너 사랑하지. 그래~. 너밖에 없어. 사랑해~. (전화를 끊음)
옆에 있던 어린이 : 선생님. 여자친구 이름 미진이 아니에요? - 선생님 : 투(two)~투(two). 투(two), 투(two), 투(two)~. 다른 말로 세컨드(second). 어때요? 숫자 2 확실하게 배웠죠?
"국회의원 어렵지 않아요~"
KBS TV 개그콘서트의 '사마귀유치원' 편이 방영되고 있었다. 무심코 시청하다 크크 웃음이 나왔다. '듣던 대로 범상치 않네'라는 느낌도 들었다. 이어 일수꾼 선생님(최효종 분)이 장래희망 국회의원이 되는 법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친다.
"어린이 여러분. 국회의원이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 아주 쉬워요.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국회의원을 가장 많이 배출한다는 판사가 되면 돼요. 이렇게 판사가 된 여러분은 집권여당의 수뇌부와 친해져서~, 집권여당의 공천을 받아~, 여당의 텃밭에서 출마를 하면 돼요. 출마할 때도 공탁금 2억만 들고 선관위로 찾아가면 돼요. 너무 쉽죠? 선거유세 때 평소 안 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만 해주면 되고요. 평소 먹지 않던 국밥을 한번에 먹으면 돼요. 공약을 이야기할 때는 그 지역에 다리를 놓아준다던가 지하철역을 개통해준다던가. 어~ 현실이 너무 어렵다고요? 괜찮아요. 말로만 하면 돼요. 또 상대방 약점만 잡으면 되는데 과연 아내 이름으로 땅은 투기하지 않았는지, 세금은 잘 내고 있는지. 무조건 하나는 걸리게 되어 있어요. 이렇게 해서 여러분, 이 약점을 개처럼 물고 늘어진다면 국회의원이 될 수가 있어요."
청중이 박장대소하는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다. 사실 공감이 가는 풍자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홍준표 대표도 최근 "우리 당에 판·검사 출신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대통령부터 시장, 국회의원이 '동남권 신공항' 등 장밋빛 공약 남발하고 당선 후 안 지키는 것도 일상이다. 우리 선거가 지독한 네거티브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일수꾼 선생님이 그러면 '행복한 결혼하는 법'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더 들어봤다.
"어린이 여러분, 결혼은 어렵지 않아요. 결혼은 믿음, 사랑 그리고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할 수 있는 돈만 있으면 돼요. 가입해서 내가 원하는 완벽한 상대를 만나는 거 어렵지 않아요. 등급에서 만점만 받으면 되는데 만점 받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우리 아버지가 공무원이다. 근데 장관 차관급 이상이다. 만점이에요. 우리 아버지는 회사원이다. 근데 대기업 임원 이상이다. 만점이에요. 우리 아버지는 은행원이다. 지점장급 이상이다. 만점이에요. 제1금융권만 돼요. 근데 우리 아버지는 회사를 안 다니시고 가게를 하신다고요? 가게를 하셔도 어머니 아버지 합쳐서 자산이 20억이 넘으면 만점이에요. 너무 쉽죠?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합쳐서 20억. 너무 검소하죠? 여러분, 결혼할 때 가장 걱정되는 게 결혼식장이에요. 호텔에서 결혼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여러분 친구 300명이 축의금 20만원씩만 내준다면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어요. 그런데 5만원 낸 친구들은 어떻게 하느냐고요? 5만원 낸 친구들은 식장에 와서 밥은 안 먹고 그냥 숨만 쉬다 가면 돼요."
실제로 이럴까. 몇 년 전 '동아일보'가 결혼정보업체와 공동으로 조사해보니 상류층 자제는 상류층 자제와, 심지어 강남 거주자는 같은 강남 거주자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왔다. - '1대 99의 양극화 사회' 풍자
풍자는 의미의 비약과 도치로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시청자의 세계관을 터칭(tou-ching)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청하면서 '맞아. 요즘 세태가 저렇지'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개그가 성공하는 것이다.
시청자는 다양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중엔 양극화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도 있다. 우리 국민 중 상당수는 우리 사회를 '1%와 99%로 양분된 사회'로 보고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과 '결혼' 에피소드는 시청자의 이러한 세계관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웃음과 공감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즉, '집권여당 국회의원 되기'나 '완벽한 조건의 배우자와 결혼하기'가 상위 1%만의 특권이라는 점을 시청자의 보편적 상식에 부합하게 조목조목 보여주고 있다. 이어 이를 '어렵지 않아요'라는 역설로 도치함으로써 재미를 주는 것이다.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도 유사한 웃음 유발 원리를 쓰고 있다. 시청자는 '경찰, 군, 대통령은 관료주의에 젖어있고 시민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라는 인식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다. 이 코너는 시청자의 이러한 인식체계에 부합하는 소재를 극명하게 부각함으로써 웃음과 공감을 유도한다.
경찰 1 : 테러범이 한국대교를 폭파하겠다고 합니다. 10분 안에 다리를 통제해야합니다.
경찰 2 : 아. 안 돼. 못해. 내가 청장님한테 보고하러 가겠지. '지금 한국대교를 급히 통제해야겠습니다' 하면 청장님이 '그래? 그럼 장관님한테 보고하도록 해' 그러겠지. 장관님이 '어. 자네 무슨 일인가' 하면 '네. 한국대교를 급히 통제해야겠습니다' 하면 장관님이 '어 실무회의를 해야겠군'이러고 실무회의 가서 '무슨 일인가' 하면 '한국대교를 급히 통제해야겠습니다' 이렇게 몇 번을 이야기해야해. 똑같은 얘기를. 시간 다 잡아먹고.
비상대책위원회는 위급상황에서도 언론에 어떻게 비치는지만 고민하는 대통령의 행태도 꼬집고 있다. 대통령을 개그의 소재로 등장시키는 점은 진일보한 측면이라고 할 것이다. 중국 텔레비전이 국가 주석을 풍자하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렵다. 아시아 권역에서 우리 방송매체와 개그맨이 높은 수준의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여러분. ㅋㅋ
그러나 미국과 비교할 때엔 상황이 달라진다. 예컨대 우리의 개그맨은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풍자하고 있지만 '이명박'이라는 구체적 인물을 다루지는 못한다. 반면 미국은 '오바마'나 '부시'를 조롱할 자유가 완전히 보장돼 있다.
심지어 코미디언인 스티븐 콜베어는 몇 년 전 자기 옆자리에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을 앉혀놓고 열렬하게 그를 비꼬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영화 '록키'의 주인공 록키 발보어에 비유될 수 있다. 록키가 링에 쓰러질 때마다 국민은 제발 일어나지 말라고 외치지만 그는 계속 일어난다"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32%라는 것은 컵에 물이 3분의 1쯤 차 있다는 의미다. 그런 먹다 남은 물은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역류로 침이 많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와 같은 식이다.
코미디언이 면전에서 대통령을 풍자할 수 있는 미국과 우리 사이의 '표현의 자유' 간극은, 우리와 중국 사이의 간극만큼이나 크다고 할 것이다. 다만 우리의 경우 인터넷이 이를 메우려 한다. 대신 개그의 정파성은 극단으로 치솟는다.
'나는 꼼수다'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 대표적이다. 이 방송은 '가카 헌정방송'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반(反)MB 친(親)야당'을 노골화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대선 유세 때 말한 "나는 그런 식으로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나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여러분" 같은 육성이 우스꽝스럽게 편집되어 있다. 이 육성을 들은 뒤 'ㅋㅋ(인터넷식 표현)'하는 웃음이 나오도록 유도한다. 맥락과 관계없이 특정 표현만을 떼어내어 임의로 가지고 노는 브리콜라주(bricolage·전유)의 전형이다.
'청춘의 분노를 투표 참여로 표출하라'는 '나꼼수'의 메시지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큰 힘이 됐다. 그런데 이 메시지 역시 KBS TV 드라마 '프레지던트'의 보수 성향 집권여당 후보(최수종 분)의 육성 대사를 브리콜라주한 것이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개그는 시청자의 특정 세계관을 강화한다. '사마귀유치원'이나 '비상대책위원회'와 같은 시사개그나 '나는 꼼수다'와 같은 개그를 가미한 시사토크가 무서운 것이 이 대목이다. 웃고 즐기는 동안 사람들의 정치적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은 웃으면서 집권여당에 더 반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개그란 비약과 과장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풍자를 당하는 쪽에서는 꽤 억울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개그가 여론의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시사개그를 억압하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 된다. 집권여당이 이런 시도를 한다면 민심이 더 이반될 것이다.
야권도 개그의 대상돼야
이와 관련해 우리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양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진보성향 콜베어는 공화당 차기 주자인 세라 페일린의 손바닥 메모를 '핸드 프롬프터(handprompter·연설 자막기인 텔레프롬프터(teleprompter)에 손을 뜻하는 hand를 갖다 붙인 표현)'라고 조롱한다. 이때 보수 성향 폭스뉴스TV는 진보성향 오바마 대통령의 머리 위에 이슬람터번을 재미 삼아 올려놓는다.
뉴스를 비롯한 매스커뮤니케이션 콘텐츠가 다 그렇듯 개그도 어느 정도 균형감을 갖출 때 더 건강한 사회가 된다. 야권의 대선주자 후보는 지지율 1위에 올랐고, 그가 지지한 인사는 서울시를 접수했다. 현실적 권력이 돼 있는 야권도 풍자의 대상이 돼야 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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