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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미 논술] 연세대 2021 수시 논술 대비 3자 비교형 연습 문제(2009 문제 변형)

경미쌤😍 2020. 5. 1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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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로고스 논술구술학원 강사 조경미입니다.

 

연세대 논술 문제로 가장 빈출되었던 유형이 아마 3자 비교 유형!

 

1:1:1의 비교든

2:1의 비교든

어쨌든 비교 분석 능력과 추론 능력을 측정하는 문제가

많이 출제되어 왔잖아요.

과거 기출문제를 활용해서 연습 한 번 해 볼게요.

 

문제와 해제 및 예시 답안까지 읽어보시고

이왕이면 답안을 한 번 작성해보세요.

600자 내외의 길지 않은 분량이라서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도 충분히 해야

훌륭한 답안이 나오니까요.

 

이 문제는 2:1의 비교 구성을 연습하기 좋은 형태입니다.

 

그럼 여러분의 합격 소식을 기원하면서

오늘도 힘!

 


* 다음 제시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 개인의 가치판단이 학문적 주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그로 인해 끊임없이 혼동이 야기되었으며, 심지어 사실들 간의 간단한 인과관계를 확정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주장에 다양한 해석들이 개입되기에 이르렀다. [...중략...]

우리가 해결해야 할 현실 문제에 대한 규범적 가치의 공감대를 만드는 것은 결코 경험적 학문의 과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전혀 무의미하다. 경험적 분석에 근거해서 특정한 문화적 가치를 바람직한 규범으로 도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문화적 가치의 내용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타당한 윤리적 의무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종교뿐이다. [...중략...]

지식의 나무를 먹고 자란 시대에 사는 우리는 세상에 대한 분석 결과로부터 세상의 의미에 대해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는 운명이다. 우리는 경험적 지식이 점점 늘어난다고 해서 인생과 세상만사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판단이 등장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가 분명히 인정해야 할 점은, 인생과 세상만사에 대한 보편타당한 견해가 경험적 지식이 축적된 결과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중략...] 경험적 지식과 가치판단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사실에 근거한 진실만을 추구하는 과학적 의무의 이행이 바로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이다.

 

() 왕건이 궁예의 여러 장수들 중 하나로서 궁예의 은총을 받아 대병(大兵)을 맡게 되자, 드디어 궁예를 쫓아내어 객사(客死)하게 하고 또한 이신시군(以臣弑君)’의 죄를 싫어하여 전력을 기울여 궁예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될 죄를 만들어 냈다.

고려의 사관(史官)궁예는 신라 헌안왕(憲安王)의 자식인데, 왕은 그의 생일이 55일임을 미워하여 내다 버렸다. 궁예가 이를 원망하여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쳐서 멸망시키려 하였는데 그는 어느 절에서 벽에 그려져 있는 헌안왕의 초상화까지 칼로 쳤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더욱 확실한 증거를 만들기 위하여, ‘궁예가 태어난 뒤에 헌안왕이 엄히 명령을 내려 궁예를 죽이라고 하였는데 궁녀가 누대 위에서 아래로 궁예를 던지니, 아래에서 유모가 받다가 그만 잘못하여 손가락이 그의 한쪽 눈을 찔러 눈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유모가 비밀히 그를 길러냈는데 그가 10여 세가 되어 장난이 심하였다. 이에 그 유모가 울면서 왕이 너를 버리신 것을 내가 차마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몰래 길렀는데 이제 네가 미친 듯이 멋대로 행동함이 이와 같으니 만일 남이 알면 너와 나는 다 죽을 것이다.”고 하니, 궁예가 듣고 울며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중략...]

만약 사관의 말이 맞는다면, 궁예가 비록 헌안왕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그가 태어난 날 누대 위에서 죽으라고 던진 날부터 이미 부()라는 명의(名義)가 끊어진 것이니, 궁예가 헌안왕의 몸에 직접 칼질을 하더라도 시부(殺夫)의 죄가 될 수 없고, 신라왕의 능()과 도읍을 유린하더라도 조상들을 욕보인 죄를 논할 수 없을 터인데, 하물며 왕의 초상화를 치고 문란한 신라를 혁명하려고 한 것이 무슨 큰 죄나 논란거리가 되겠는가.

그렇지만 고대의 좁은 윤리관으로는 그 두 가지 일 헌안왕의 초상화를 칼로 친 일과 신라에 대한 불공(不恭) 만으로도 궁예에게는 죽어도 남을 죄가 있는 것이니, 죽어도 죄가 남을 궁예를 죽이지 못할 게 무엇이랴.

이리하여 왕건은 살아서 고려의 통치권을 가지고 죽어서 태조 문성의 시호를 받았더라도 추호도 부끄러울 게 없게 된 것이니, 이것이 고려의 사관이 구태여 세달사(世達寺)의 일개 걸승(乞僧)이던 궁예를 가져다가 고귀한 신라 황궁의 왕자를 만든 이유일 것으로 생각한다.

 

() 작가는 우선 그의 독자들에게 거짓되지 않은 것, 진실한 것만을 말하고 보여주기로 애초부터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진실은 무엇보다도 독자들의 삶에 깊이 관계된 것입니다. [...중략...]

그러면 우리들의 그 삶의 진실이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물론 행복한 삶에 관한 것입니다. 보다 더 풍족하고 의롭고 정직한 삶에 관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보다 더 사람다운 삶에 관계하는 것입니다.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을 소설로써 고발하는 것, 의롭지 못한 일을 증언하는 것, 우리의 삶을 부당하게 간섭해 오거나 병들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비인간적인 제도와 억압에 대항하여 싸우고 그것들을 이겨나갈 용기를 모색하는 것, 소위 새로운 영혼의 영토를 획득해 나가고 획득된 영토를 수호해 나가려는 데 기여하는 모든 문학적 노력이 종국에는 다 우리의 삶을 보다 더 윤택하고 행복스럽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삶의 진실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가 그의 작품으로 그런 삶의 진실을 위해 싸우는데 독자가 그것을 배척하고 외면할 리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과 관련하여 가장 깊고 큰 진실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삶을 가장 삶다운 삶으로 돌아가 살게 하는 옳은 질서는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의 어떤 평론가 한 사람은 우리의 삶을 삶답지 못하게 하는 모든 비인간적인 풍습과 제도와 문물과 사고를 통틀어 우리 삶을 억압하는 것들이라고 표현한 일이 있습니다만, 우리 삶이 그 억누름으로부터 벗어나서 온전한 삶, 본래의 자유롭고 화창한 삶으로 돌아가게 하는 질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유의 질서입니다. 이 자유의 질서야말로 우리의 가장 크고 깊은 삶의 진실이 아닐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문제 1] 제시문 (), (), ()의 주장을 비교하고 제시문 ()의 주장이 타당한지 따져보시오. (600자 내외)

 


이 문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에 있어 지식이 가치의 판단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검토하며, 지식이 규범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가치중립적인 것이 될 수 있는지, 지식이 특정한 가치나 권력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객관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객관적 지식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관한 여러 입장을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근대 사회에서 자유와 이성의 발전을 위한 노력은 계몽주의자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권력의 시녀로서 기능하는 지식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비판적인 이성을 향한 추구를 그 내용으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이성의 활동에 의한 객관적 지식의 추구는 근대 이후에도 많은 장애에 직면하였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문제는 다양한 형태의 지식과 정보인 역사적 지식, 과학적 지식, 언론의 보도, 문학 등에서 나타나는 지식과 가치의 관계를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전통사회의 신화나 역사적 지식에서는 지식에 대한 권력의 작용이 보다 직접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역사는 역사의 승자가 된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승자를 찬양하고, 때로는 패자를 비난하는 형태로 왜곡되기도 하지요.

 

과학의 이념은 이해관계나 가치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과학적 태도는 연구자의 가치판단을 최대한 배제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지식의 객관성을 옹호하는 입장과 함께 지식의 비판적 정신을 강조하는 입장이 있어, 지식의 객관성에 대한 인식을 대립적으로 파악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따라서 지식과 가치의 관계에 관한 입장은 크게 보아 지식의 가치중립성을 주장하는 쪽과 지식이 특정한 가치를 반영한다는 입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후자의 입장은 다시 지식이 권력을 위해 봉사한다는 입장과 권력의 모순과 부조리를 폭로하고 비판한다는 입장으로 구분됩니다.

 

그럼 제시문을 비교해봅시다. 제시문 ()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사회과학 연구에서의 가치중립성>이라는 논문의 일부를 수정한 것인데, 이 글은 학문의 객관성과 가치중립성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견해입니다. 이 글에서 막스 베버는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이 혼동되어서는 안 되며, 또한 사실판단에 해당하는 경험 및 과학적 분석의 내용이 가치판단의 기초가 될 수 없다는 점과 또한 개인이 지닌 가치판단으로 인해 사실판단에 혼란이나 왜곡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특히 자신이 살았던 19세기말의 독일 사회 과학계에서 연구자의 가치관이나 가치판단을 앞세워 경험적 자료에 기초한 인과관계 규명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제시문 ()<조선상고사> ‘총론의 일부로서 <고려사>에 대한 비평입니다. 신채호에 따르면 궁예는 원래 중에 불과한 인물이었는데, <고려사>에는 궁예가 헌안왕의 아들로서 불효 불충한 자였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사관들은 왕건이 궁예를 배신한 행위, 즉 신하가 임금을 죽인 행위를 정당화하고자 중이었던 자를 왕의 아들로 왜곡하여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신채호의 주장이 암시하는 바는 <고려사>의 역사적 지식이 성공한 왕건의 입장에서 실패한 궁예가 왜 죽어 마땅한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제시문의 후반부에서 신채호는 과거의 역사서에서 제왕/역적의 구분은 그가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에 달려 있고, 정론/사론(正論/邪論)의 구분은 다과(多寡)의 차이일 뿐이며, 게다가 역사서에는 문면의 착오와 집필자의 호오가 섞여 있다고 말합니다. 이 제시문을 통해 신채호는 역사가 첫째, 성공한 자의 편에서 쓰인다는 점, 둘째, (유교적)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읽어내야 합니다.

 

제시문 ()는 이청준이 1977년에 발표한 소설 <지배와 해방>의 일부로서 소설 속 등장인물인 이정훈이라는 젊은 소설가의 강연 내용입니다. 강연의 주제는 작가는 왜 쓰는가?’입니다. ‘작가는 무엇 때문에 소설이라는 것을 쓰고 또 써야 하는가,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으로 쓰는가?’에 대한 고찰이 드러나는데요. 제시된 부분은 독자와의 관계에서 작가 혹은 문학이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한 주장입니다. 작가, 혹은 문학은 독자에게 삶의 진실, 곧 온전하고 화창한 삶의 질서로서의 자유를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을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작가는 그러한 자유를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병들게 하거나 불행하게 하는 모든 억압을 고발하고 증언하며 그것들에 대항해 싸우고 이겨나갈 용기를 모색해야 합니다. 이청준은 이러한 비판적 역할을 통해 문학은 독자, 나아가 사회에 대해 윤리적, 정치적 의의를 인정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시문을 분석한 후에는, 우리 사회에서 가치판단이 과학 분야는 물론 철학, 문학, 역사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논쟁거리가 되어 왔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에 대한 지식에는 개인의 가치판단이 개입되지 않아야 하며 그것이 개입된 판단은 옳다고 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거의 모든 분야의 지식에 가치판단이 필연적으로 개입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다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시문 ()는 개인의 가치판단이 경험적인 지식과는 별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가치판단이 학문적인 주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학자들은 학문을 논할 때, 사실에 근거한 진실을 가려내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제시문 ()()는 이 의견과 결을 달리 합니다.

 

제시문 ()에 등장하는 사관은 왕건이 왕권을 획득하고 수호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즉 궁예의 죽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를 신라 왕족의 혈통으로 설정하여 죄를 부풀린 것입니다. 이 같은 사관의 행동에는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으며, <고려사>에는 당시의 정세에 휘말린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시문 () 역시 ()와 유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시문 ()의 주장은, 작가는 자유라는 진실을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 주장은 표면적으로는 제시문 ()와 상통한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만, 제시문 ()에서 작가가 추구하는 진실은 자유입니다. 즉 작가는 자유라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 그것을 억압하는 제도, 관습, 문물을 고발해야 합니다.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관인 진실 자체가 가치판단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제시문 ()는 제시문 ()의 주장과 맥락을 달리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제시문들의 관계를 파악했다면, 제시문 ()의 주장은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더 큰 모순을 낳을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하는 답안을 작성해야 합니다. 제시문 ()는 예를 들면 역사학에 적용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듯, 시대와 시대 간의 소통에 의해 성립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역사는 시대상을 내포할 수밖에 없고 시대적인 가치판단을 필연적으로 반영하게 됩니다. 제시문 ()와 같이 어떤 가치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서 역사에 대한 기술이 판이하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제시문 ()가 주장하는 것처럼 작가들이 선택하는 진실이 자유라는 기준에 따라야 한다면 문학은 그러한 가치 기준을 수호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 ()의 관점을 비교한 후, ()의 주장의 타당성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되겠습니다. 사실 문제만 읽어보아도 ()(), ()를 비교한 후, ()의 주장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글 구성을 하기를 바라는 출제자의 의도를 간파해볼 수 있습니다.

 

[문제 1] 예시 답안

사실과 가치판단의 관계에 대하여, ()는 사실적 지식에는 개인의 가치판단이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는 시각이고, ()()는 각 분야의 지식에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거나 개입되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에 따르면, 학문을 논할 때 가치판단이 개입되면 지식이 왜곡될 수 있으니, 학자들은 사실에 근거한 진실만을 밝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 가치판단과 경험적 지식은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에서의 사관은 일개 승려였던 궁예를 신라의 왕자로 만들어내는 역사 왜곡을 했는데, 이는 사관이 왕건의 통치권을 정당화할 근거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편 ()에 따르면, 작가는 자유라는 진실을 추구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나 관습 등을 고발함으로써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 , 자유를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작품에 실현해야 한다.

그러므로 ()처럼 사실만을 밝히려는 태도는 역사나 문학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역사는 시대와 가치관을 필연적으로 반영하여 성립된다. 역사는 역사가의 가치관을 담아 중요한 사실을 선택하고 기록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학을 창작하는 작가들도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교훈으로 담아낸다. 단순히 현실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데 그친다면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이 작용할 수 없고, 독자는 교훈의 얻을 기회를 상실하게 되므로 가치판단은 필연적이며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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