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로고스 논술구술학원 강사 조경미입니다.
지난 시간에 아이들에게 경희대 인문계열의
철학적인 인상이 강한 문제를 한 번 풀게 해봤는데요
개인적으로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도 있고,,
경희대가 후마니타스 교양 수업을 하는 부분도 있고..
뭐 이것저것 고려하다가 이 문제를 골랐었어요.
죽음은 삶의 끝을 의미하지만
그래서 사는 동안 더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역할을 하기도 해요.
그리고 육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니
어찌보면 막 거부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슬퍼할 일만도 아니잖아요.
..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문제를 한 번 읽어보세요.
[문제 1] 제시문 [가]와 [나]의 내용을 요약하고, 논지의 차이를 서술하시오. [601자 이상 ~ 700자 이하]
[가] “그런데 정화(淨化)는 아까부터 논의 속에서 이야기되었던 바로 그것이 된 셈이 아닌가? 최대한 몸으로부터 영혼을 분리하고, 영혼이 모든 면에서 몸으로부터 떨어져서 그것 자체로만 한데 모이고 서로 뭉치도록, 그리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마치 사슬로부터 풀려나듯 몸으로부터 풀려나 가능한 한 오직 그 자체로만 살아가도록 길들이는 것 말일세.” “물론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죽음이라 불리는 게 아닌가? 몸으로부터의 영혼의 풀려남과 분리.”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풀려나게 하기를 늘 열망하는 건,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누구보다도 그리고 오로지 올바르게 철학을 하는 사람들뿐이고, 철학자들이 수행하는 바로 이것이네. 몸으로부터 영혼의 풀려남과 분리. 그렇지 않은가?” “그래 보입니다.” “그러면 내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어떤 사람이 살면서는 죽어 있는 것과 최대한 가까운 상태로 사는 준비를 하다가 막상 그것이 자신에게 닥치자 노여워한다면, 그건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니겠나?”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어찌 아니겠습니까?” “그럼 심미아스, 실제로 올바르게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죽는 것을 수행하는 것이고, 죽어 있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 가장 덜 두려운 일이군. 이런 관점에서 한번 살펴보게. 만일 그들이 몸과는 모든 점에서 반목하면서 영혼 자체를 그것 자체로 가지기를 열망하는데, 그 일이 일어나자 겁을 내고 노여워한다면, 그건 엄청나게 불합리한 일이 아니겠냔 말일세. 그곳에 다다르면 일생을 통해 사랑해 온 것을-그들은 현명함을 사랑하지-얻게 되고, 서로 반목하며 함께 지내온 것으로부터 해방될 희망이 있는 바로 그 장소에 그들이 기쁘게 가지 않는다면 말일세. 연인들과 아내들과 아들들이 죽었을 때 실로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하데스로 가려 했네. 그곳에서 그들이 열망했던 사람들을 보게 되고, 그들과 함께 있게 되리라는 희망에 이끌려서 말일세. 그런데 누군가가 정말로 현명함을 열망하고, 동일한 희망, 즉 하데스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현명함과 제대로 만나지 못하리라는 확고한 희망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게 되자 노여워하고 그곳에 즐거이 가지 않을 거라고? 벗이여, 진정으로 철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네. 그에게는 그곳을 제외하고는 어디에서도 현명함과 순수하게 만나지 못하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을 테니 말일세. 그런데 만일 사정이 이러하다면, 방금 내가 말한 대로, 그런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건 매우 불합리하지 않겠나?” 그가 말했습니다.
[나] 인간은 기계에 불과하다. 물론 일반적인 기계가 아니라 ‘놀라운’ 기계다. 우리는 사랑하고, 꿈꾸고,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기계다. 계획을 세우고 이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런 기계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기계다. 그리고 기계가 작동을 멈추는 순간 모든 게 끝난다. 죽음은 우리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신비가 아니다. 죽음은 결국 컴퓨터가 고장 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현상이다. 모든 기계는 언젠가는 망가지게 되어 있다. 인간이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니 부디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마지막 축복을 누릴 때까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좋은 일이다. 오래 사는 것이 전체적으로 내게 좋은 것인 한 죽음은 나쁜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죽음은 너무나 일찍 찾아온다. 하지만 영생을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영생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다. 죽음을 바라보면서 이를 거대한 미스터리, 너무 두려운 나머지 감히 마주할 수 없는 압도적이고 위협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결코 합리적인 태도라고 볼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나는 ‘부적절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너무 빨리 죽는다는 사실에 슬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기회를 부여받은 게 얼마나 놀라운 행운인지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인생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
이 문제는 [가]와 [나]의 내용을 요약하고, 두 제시문의 논지 차이를 서술하기를 요구하고 있으니, 경희대 인문계열의 전형적인 유형입니다. 두 제시문을 읽고 수험생은 ‘죽음’이나 ‘삶의 끝’에 대해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단, 두 제시문에서는 ‘죽음’이라는 공통 개념어를 토대로 죽음이 현재의 삶과 내세가 단절되는 지점이라고 인식하는 점에서는 유사한 견해를 보이지만, 죽음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있고 이는 곧 현세와 내세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점을 찾아야 합니다.
[가]에서는 ‘몸으로부터의 영혼의 풀려남과 분리’라는 구절을 통해 죽음을 고통스러운 끝으로 여기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낳는데, 현세에서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육체가 죽음을 통해 욕망에서 탈피하여 영혼의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죽음은 육체에 묶여 있던 존재의 온전한 해방을 낳으며, 선이나 현명함을 온전하게 성취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 이후에 획득하게 될 현명함과 이상적 상태를 생각한다면,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가]의 견해에 따르면 현세가 끝나더라도 내세에서 진리를 얻으며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살면서 그렇게 아등바등 자유로워지기를 원했으면서 죽음 이후 영혼의 완전한 자유를 획득할 사람들에게 왜 죽음을 두려워하냐고 항변하고 있네요.
참고로 이 글은 소크라테스와 심미아스의 죽음에 대한 대화입니다. 이미 많은 수험생들이 알고 있겠지만,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며 법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하지요? 그것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만약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받아들였다면, 이 제시문에서처럼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아테네 시민들에게 설파했던 사후세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죽음은 좌절스러운 끝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육신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는 영혼의 해방이라 여겼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그 죽음도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덜 힘들게 수용했던 게 아닐까요?
한편 [나]에서는 인간은 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기계가 고장나듯 인간도 모든 게 멈추어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입장에서는 죽음이 곧 끝이고 소멸을 의미하며 현세와 내세는 단절됩니다. 다만, 죽음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며 무서워하지는 말라고 해요. 죽음이 두려울 수도 있겠지만 죽음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죽음을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부적절한 반응이라고 여기며, 오히여 죽음에 대해 두려워함으로써 사람들은 현재 삶의 가치를 더 크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죽음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까지 여깁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죽음을 인식함으로써 현재 살아있는 것, 즉,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를 인식하게 되어 인생의 균형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나]는 죽음을 좀 더 최선을 다해 사는 삶으로 승화시키는 태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만약 우리의 삶에 끝이 없다면,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 수 있을까요? 만약 영생한다면, 어차피 내일도 살 수 있는데,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며 희망이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매일 그냥 살아있으니 살아가는 무의미한 삶을 살 수도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100살 이전에 사망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남은 삶을 최대한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하고 더 열심히 배우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것 같아요. 이 문제 주제나 제시문이 참 철학적이죠? 경희대는 이렇게 심오한 주제를 참 좋아합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논술 문제를 눈과 머리, 그리고 언젠가는 마음으로 혼신을 다해 풀어내면서, 출제자의 인간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에 공감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첫 문단의 첫 문장은 공통점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시작해야 하며, 두 번째 문단의 첫 문장은 두 제시문 사이의 구체적인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논해야 합니다. 구조를 꼭 암기해두고 문장을 구현해보세요.
[문제 1] 예시 답안
죽음은 현세와 내세가 구분되는 시점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현재의 삶과 미지의 내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달라질 수 있다. 제시문 [가]에 따르면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은 죽음을 통하여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죽음은 육체의 욕망으로 점철되었던 인간이 마침내 육체로부터 풀려나 영혼의 자유를 얻고 참된 선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순간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제시문 [나]에서의 인간은 기계와 같이 영혼이 없기 때문에 죽게 되면 모든 것들이 소멸하게 된다. 따라서 죽음은 곧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이므로 누구에게나 공포의 대상이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현재의 삶이 더욱 소중하게 인식되게 하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제시문 [가]와 [나]는 상이한 관점에서 죽음에 대한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제시문 [가]에서 인간은 죽음을 통해 육체에 갇혀 이르지 못했던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사후의 세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반면, 제시문 [나]는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죽음 이전의 현세만이 우리에게 부여된 소중한 기회라고 보며, 필연적이고 예측 불가능하게 다가오는 죽음 덕분에 이를 알게 되므로 우리는 현재 삶을 아름답게 인식하고 인생의 균형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 (634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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