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토요판/몸] 인체 수집의 역사 (하)
▶ 몸의 주인은 당신입니다. 그럼, 몸의 부산물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당신의 머리에서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워 누가 가발을 만든다면요? 남성이라면 어릴 적 공중화장실에 설치된 하얀 통이 기억날 겁니다. 최근에는 수술로 떼어낸 암세포와 성형수술로 벗겨낸 피부까지 거래됩니다. 법적으로 '의료폐기물'인 몸의 일부는 몸에서 떨어져나간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의료산업은 이것들을 주워 돈을 벌어들입니다.
세계 최초의 세포주 '헬라세포'
5000만t 넘게 배양되면서
의사와 병원이 돈 버는 동안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은
의료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했다
의료폐기물은 버려지지 않고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에
분류되고 가공되고 수집된다
1999년 미국 전역에서는
최소한 1억7800만명에게 채취한
3억700만개 조직이 수집됐다
1951년 2월, 미국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존스홉킨스병원에서 한 의사가 하혈과 복통으로 고생하던 여성의 자궁경부에서 종양을 발견해 그 일부를 채취했다. 채취된 샘플은 곧 검사실로 넘겨졌고 얼마 뒤 자궁경부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환자의 이름은 헨리에타 랙스. 1920년에 태어난 그녀는 이제 겨우 서른을 넘긴 젊은 여성이자 다섯 명의 어린 자녀를 둔 엄마였다. 암세포에게 자비란 없는 법, 결국 헨리에타는 그해를 넘기지 못한 채 숨졌고 다섯 아이들도 엄마를 잃었다.
그녀가 숨지던 그날, 또 하나의 존재가 탄생했다. 적절한 조건만 갖춰주면 무한증식이 가능한 최초의 세포주, 헬라세포(HeLa cell)가 그 주인공이었다. 헨리에타를 진찰한 의사 조지 오토 게이는 그녀의 몸에서 채취한 조직 샘플을 배양하다가 이 세포들이 무한분열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적절한 환경만 갖춰주면 무한증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세포주로 구축했다.
소아마비 예방 백신 만든 헬라세포
처음 헨리에타의 몸에서 채취된 조직 샘플의 크기는 동전보다도 작았지만, 2009년 기준으로 전세계 실험실에서 배양된 헬라세포는 무려 5000만t이 넘을 정도이며, 지금도 다달이 300건이 넘는 논문이 헬라세포를 이용한 실험을 바탕으로 작성된다. 헬라세포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장애를 남긴 소아마비를 지구상에서 몰아낸 일등공신이었다. 소아마비를 예방하는 백신이 바로 헬라세포를 이용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헬라세포는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바이러스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즉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이 바이러스의 존재를 밝혀내는 데도 결정적인 구실을 했고, 암을 치료하는 근본 타깃이 되는 텔로미어(말단소체) 연구에도 많은 공헌을 했다.
헬라세포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많은 의사와 연구자들은 저마다 인체의 다양한 조직들을 이용해 세포주 만들기에 나섰다. 세포주 수립에 이용되는 세포들은 주로 무한증식 능력을 가진 암세포가 이용됐다. 의사들은 환자의 몸에서 떼어낸 악성종양을 이용해 세포주를 만들고 특허를 신청했다. 인체에서 유래됐으나 연구자의 손을 거친 세포주들은 하나의 상품이 돼 팔려나갔고 헬라세포를 비롯해 이 가운데 몇몇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예전 같으면 의료폐기물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을 악성종양 덩어리들이 값비싼 상품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것은 곧 인체 수집 리스트의 상단에 오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인체 조직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현재 인체 수집의 대상은 주로 이전 같았으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을 의료폐기물들이 주를 이룬다는 특징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같이 배출되는 탯줄과 태반은 대개 그대로 버려졌으나, 요즘에는 이 또한 수집 품목에서 빠지지 않는다. 탯줄에 포함된 제대혈이 백혈병을 비롯한 난치병 치료에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고, 태반에는 피부 노화를 방지하는 성분이 들어 있어 값비싼 화장품 원료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포경수술 이후 버려지는 포피 조각이나 성형수술 때 잘리는 피부 조각 그리고 머리카락이나 소변처럼 인체의 일부는 아니더라도 인체에서 만들어져 빠져나오거나 분비되는 것들조차도 수집 대상이 되었다.
한국인의 소변 받아 우로키나제로
이들을 수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 돈이 되기 때문이다. 피부 조각을 수집하는 이유는 쉽게 이해가 된다. 인체에서 얻은 피부 조각을 가공하면 화상 환자에게 이식할 인공피부를 만드는 재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머리카락과 소변은 어떻게 이용되는 것일까? 실제로 1960~70년대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품목에는 가발과 함께 소변이 상위에 올라 있었다. 산업 발달이 미비해 이렇다 할 수출품이 없던 당시 국내의 주요 수출품은 우리의 몸에서 얻어지는 것들이었다. 여인들의 풍성한 머리채는 싹둑 잘라져 가발로 변모했고, 소변은 변기에 누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공중화장실마다 따로 비치되었던 흰색 플라스틱 통에 부어 모으는 것이었다. 소변을 정제해 얻어지는 우로키나제는 중풍 치료제로 이용됐는데, 우로키나제 1㎏의 가격은 2000달러를 호가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1000달러 남짓하던 시절, 우로키나제는 상당히 매력적인 고가의 수출품이었기에 수집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정 물품이 유용하다는 것은 그 품목이 시장에서 비싸게 거래될 수 있다는 뜻이며 수집 가치가 있다는 사실과 통한다. 이제는 인체에서 채취하거나 제거된 거의 모든 조직 샘플은 쓰레기통이나 소각로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들은 분류되고 가공되어 다양한 상품 개발을 위해 보관된다. 1999년 미국의 한 연구소에서는 당시 기준으로 미국 전역의 병원과 연구소에는 '최소한' 1억7800만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채취한 3억700만개의 조직이 수집돼 보관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마도 이 샘플의 개수는 지금쯤은 더욱 덩치를 불렸음에 틀림없고 이런 현상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많은 국가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인체조직을 광범위하게 수집해 보관하는 이유 또한 간단하다. 이들을 잘만 가공하면 엄청난 이윤을 남기는 상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점점 활성화되고 있는 '인체시장'에 대한 대비라고도 볼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세포주를 구축하기 위해, 인공피부를 만들기 위해, 백신과 치료를 포함한 다양한 의약품과 생명공학 제품을 만들기 위해 인체조직을 수집한다. 다양한 가공처리를 거쳐서 탄생한 '제품'들은 각자 고유의 특허번호를 부여받고 시장에서 비싼 값에 거래된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든다. 앞서 말했듯 헬라세포는 의학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다면 이 헬라세포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조직 샘플을 제공한 헨리에타도 그 이익을 향유했을까?
대답은 '아니오'다. 사실 헨리에타는 죽을 때까지 그녀의 담당 의사가 자신의 세포로 세포주를 구축하고 있는 사실조차 몰랐고 그것은 그녀의 남은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의사는 세포주를 구축하면서 조직을 제공했던 그녀뿐 아니라 그녀의 가족에게조차 얘기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자녀들은 상실감과 함께 경제적 빈곤에 시달려야 했다. 이 사례뿐만이 아니다. 다른 많은 인체조직 유래 상품들도 생산자가 전혀 이익을 얻지 못하거나(대부분 숨졌기 때문에) 혹은 자신의 일부가 팔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의사, 연구자가 고지하지 않았기 때문에)가 허다하다.
암조직뿐 아니라 태반과 탯줄 등 수집된 대부분의 인체조직은 의료폐기물, 그야말로 '쓰레기'로 분류되기 때문에 주인이 없다고 간주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는 줍는 사람이 임자이며, 쓰레기를 주워서 만든 재활용품은 이를 가공한 사람이 이득을 얻는 것이 사회통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체조직의 수집 범위가 점점 더 광범위해지고 거기서 얻어지는 품목들의 가격이 점점 더 높아지는 현실에서 계속해서 이들을 '폐기물'로 간주해도 될 것인지 의문이 든다. 헨리에타의 딸이 말했듯 의사와 병원이 그녀의 어머니의 몸에서 얻어낸 조직으로 엄청난 이윤을 벌어들이는 동안 어머니를 잃은 어린아이가 가장 기본적인 의료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비참한 생활을 한 것이 과연 정당할까?
이은희/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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