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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TORY

너를 보내고 오늘로 딱 10년

by 경미쌤😍 2018. 3. 6.


기니피그를 처음 알게 된 건,

해부실험을 위해 모르모트를 데리고 왔을 때였다.

처음엔 정들이지 말고 밥만 줘라해서 그러려고 했다.

실험 당일까지 며칠 간 실험실 한 구석에서 길러야 했는데..

그러다 정이 들어 결국 해부하는 날

나는 토끼와 모르모트를 마취시키지 못하겠다고 울어버렸다.

선배에게 크게 혼이 나고,

울어 퉁퉁 부은 눈으로 토끼랑 모르모트 몇 마리를 마취시켰다.

클로로포름 냄새에 나도 같이 마취가 되었으면 싶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내 꿈에 대해 고민했고,

몇 년이 걸렸지만, 현실의 제약과 능력 부족을 인정하고 오랜 꿈을 기꺼이 포기했었다.



우리 카라는 내가 이렇게 심리적으로 괴로워하던 때

사죄하는 마음으로 청계천에서 입양했다.


그때만 해도 모르모트가 기니아피그, 기니피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지도 잘 몰랐는데,

어쨌든 카라는 기니피그였다.


카라라는 이름은 고대 이집트에서 인간의 영혼을 일컫는 Ka와 태양신 Ra를 조합한 것으로,

좋아하는 나라의 이미지를 카라에게 선물했었다.

누군가는 쥐에게 신의 이름을 붙였다고 놀렸었지..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청계천 어떤 거리에 강아지, 고양이, 새, 거북이 등을 파는 구역이 있었다.

선배를 통해 실험동물들도 그곳에서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

서울 길이 익숙지 않아 헤매기도 했지만,

거기서 이미 새끼라기엔 너무 커버린,

아직 팔리지 않아 덩치가 적당히 커버린 카라를 만났다.


2002년 어느 날, 그렇게 청계천에서 카라는 나의 식구가 되었다.



날이 추울 땐 내 방에서, 날이 더울 땐 거실에서 지냈고,

가끔은 한강에도 가고, 가끔은 함께 버스타고 교외로도 나갔다.


어느 날은 데리고 잠들었다가 일어나서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 당하고,

스스로 모든 이불 빨래를 해야만 했다...

..카라는 참았다가 일정 장소에 배변하는 그런 똑똑이는 아니었기 때문에ㅠㅜ


친구들을 만날 때도 가끔 데리고 갔었는데..

그때만 해도 기니피그는 생소한 설치류라서,

엄밀하게는 꼬리 있는 생쥐랑 사촌이니까 친구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그저 신기해했다..

이런 걸 키우냐고 ㅎㅎ



당시엔 카라가 몇 년을 살 것인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냥 막연하게 오래오래 내 곁에 함께 있어줄 거라 생각했지.


그러다 2008년 3월 6일, 오늘로부터 10년 전 오늘 새벽, 카라는 너무 조용하게 내 곁을 떠났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나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외출이 아니면 집밖으로 나가지도 않았고,

배고픔을 느끼지도 않았으며,

울기만 했었다.

..그 고통을 알면서도 또 강아지를 사랑했고 사랑하는 중이다..

미련하긴. 10년 전 다시는 누군가를 키우지도 애정하지도 않겠다고 다짐해놓고.

그 미련한 다짐은 매번 새로운 식구를 들일 때마다 꼬깃꼬깃 던져버린다.


10년을 지우지 못한 카라의 흔적을 나는 오늘도 꺼내보았다.

종교를 독실하게 믿는 사람도 아니면서, 이럴 때만

먼저 보낸 나의 반려들이 하늘 어딘가에 그분 곁에 함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누군가 말했듯이, 내가 가면 마중나와주리라 믿는다.


혹시 누군가가 나처럼 먼저 떠나보낸 반려동물을 그리워하느라 아파하고 있다면 토닥토닥..

그리고 나도 스스로 다독이며 건강하게 살고 싶다. 내게도 토닥토닥..

보고 싶은 이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걸 확인할 땐 항시 눈 앞의 현실이 뿌예진다.

보고싶은 내 일부들. 헤어졌으니,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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