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오멜라스의 아름다운 공공건물들 중 하나는 지하실 방이 있다. 아니 어느 널따란 개인 저택의 지하실일 수도 있다. 그 방에는 굳게 잠긴 문이 하나 있을 뿐 창문도 없다. 거미줄 쳐진 지하실 창문으로 비치는 한줄기 희미한 빛이 그 방 널빤지 벽의 갈라진 틈으로 먼지투성이가 되어 간신히 들어올 뿐이다. 그 작은 방 한쪽 구석에는 덩어리지고 엉긴 채 딱딱하게 굳어 악취를 풍기는 대걸레 두 자루가 서 있고, 그 옆에는 녹슨 양동이 하나가 높여 있다. 바닥은 지저분하고 습기가 차 축축한 것이 여느 지하실 창고와 다를 바 없다. 가로로 두 걸음, 세로로 세 걸음 정도인 그 방은 청소 도구들을 넣어 두는 벽장이나 쓰지 않는 연장을 처박아 두는 창고에 불과하다. 그 방에 어린 아이 한 명이 앉아 있다. 남자 아이일 수도 있고 여자 아이일 수도 있다. 겉모습으로는 여섯 살쯤 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열 살쯤 되었다. 그 아이는 정신박약아이다. 태어날 때부터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공포와 영양실조, 그리고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아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중략)
오멜라스의 사람들은 모두 아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직접 와서 본 사람도 있고, 단지 그런 아이가 있다는 것만 아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아이가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이유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들의 행복, 이 도시의 아름다움,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 아이들의 건강, 학자들의 지혜로움, 장인의 기술, 그리고 심지어는 풍성한 수확과 온화한 날씨조차도 전적으로 그 아이의 지독하리만치 비참한 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오멜라스의 아이들은 여덟 살에서 열두 살 사이에, 상황을 이해할 나이가 되면 그 사실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된다. 지하실의 아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젊은이들이지만, 때로는 나이든 어른이 오기도 한다. 그리고 한 번 더 보려고 오는 이들도 꽤 있다. 아무리 설명을 그럴듯하게 들었다 해도 그 광경을 본 젊은 구경꾼들은 언제나 충격을 받고 가슴 아파한다. 자신들이 그 아이보다 훨신 낫다고 생각했던 것에 토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동안 전해 들었던 모든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직접 본 사람들은 화를 내고, 분노를 느끼며, 무력감에 빠져든다. 그 비참한 아이를 위해 뭔가 해 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들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아이를 그 지독한 곳에서 밝은 햇살이 비치는 바깥으로 데리고 나온다면, 아이를 깨끗하게 씻기고 잘 먹이고 편안하게 해 준다면 그것은 정말로 좋은 일이리라.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한다면, 당장 그날 그 순간부터 지금껏 오멜라스 사람들이 누려 왔던 모든 행복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말게 된다. 그것이 바로 계약인 것이다. 단 한 가지 사소한 개선을 위해 오멜라스에 사는 모든 이들이 누리는 멋지고 고상한 삶을 맞바꾸어야만 한다는 것, 한 사람이 행복해질 기회를 얻기 위해 수천 명의 행복을 내던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하실 안에서 벌어지는 죄악을 방기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계약은 엄격하며 절대적이다. 그 아이에게는 친절한 말 한 마디조차 건네면 안 된다.
(후략)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발췌.
이 글은 공리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며, 공리주의에 따르는 자들이 얼마나 비윤리적인 속성을 갖게 되는가에 대해 고찰해보게 만든다.
읽는 동안은 찝찝하고, 읽고 나서는 의도적으로 회피하게 되는 고민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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