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어느 복날의 이야기

강아지를 좋아한다. 내 강아지들에 대한 애정은 주변에서도 다 알 정도로 좋아한다.

어쩌면 바라는 바 없이 내게 꼬리를 흔들어주고 한없이 나만 바라봐주는 세상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사랑한다.

 

기니피그랑 쥐도 좋아한다. 개구리도 자꾸 보니 귀엽고 친해지고 싶더라.

고양이도 좀 좋아한다. 아, 토끼도 좋다.

생각해보니 다리 4개, 털이 복슬복슬하고 퐁신퐁신한 작은 동물들이 너무너무 좋다.

 

집에 청계를 키우며 '아리'들에게 이름을 붙이고나니 이제는 닭도 좋다. 잘 안 잡혀주려 하지만, 일단 날개 밑에 손을 넣으면 따스한 그 기운이 좋고, 안으면 눈만 꿈뻑이면서도 가만히 있어주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산새들 소리도 좋아한다. 잠자코 듣고 있으면 시끄럽지 아니하다.

각자마다 고유한 그 소리가 시끄러울리가 없다. 오히려 내가 짹짹이면 그에 대꾸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주는 때가 기다려진다. 그러고보니 날개 퍼덕이는 녀석들도 다 좋긴 하다.

 

처음 고라니 소리를 들었을 때는 그들 소리인지 몰라서 동네에 미친 여자가 하나 산다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소리도 나름대로 이벤트다. 강아지들 산책 나갔을 때 밭에서 산으로 뛰어가느라 우리 앞을 꽤 가까이 지나가면 기가 막힌다. 내가 얘네 목줄 제대로 안 잡았으면 너네 다 죽었다!! 그러면서도 수컷 이빨이 선명하게 보였던 걸 떠올리면 무섭긴 하더라.

 

아, 올해 사이판에 다녀오고 물고기도 좋아하게 됐다. 중력이 없는 것 같은 그 공간에 어쩜 그렇게 작고 많은 색깔이 동동 떠 있는지.

 

생각해보면 나는 동물을 꽤 좋아한다.

어쩌면 나는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애정보다는 동물에 대한 애정이 더 많다. 그리고 어쩌면 생명에 대해 선택적 애정을 가졌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후원하는 단체들이 있다. 내가 직접 행동하지 못하는 일들을 대신 해주느라 고생하는 이들에게 함께 하는 마음으로 후원도 하고 봉사도 가고 그러지만, 사실 그들과 나는 온전히 하나일 수는 없다. 모든 인식과 방향이 하나일 수는 없음을 잘 알고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게 모두 옳지 않을 수도 있음을 너무너무 잘 알고 있다.

 

해마다 오는 복날인데, 이번 복날에도 나는 머리와 마음이 충돌한다.

나는 강아지를 사랑하는 게 분명한데, 개고기를 먹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개고기를 먹지 말라면, 소나 돼지, 양과 닭고기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 도살이 잔인하다고. 개고기는 과거 조상들이 먹을 게 없을 때 먹던 거니까 이제는 먹지 말아야 한다고. 몸보신이 된다는 낭설 때문에 먹었다지만 이제는 아닌 게 분명하니 먹지 말라고.. 그래도 사실 설득이 잘 안 된다.

닭은 손바닥만 한 철장 속에서 죽을 때까지 알만 낳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목이 따이고, 돼지는 먹히기 위해 키워지고 새끼를 낳으며, 소는 먹히기 위해 사료와 풀을 먹으며 때로는 우유 생산을 위해 살아있는 젖병으로 길러진다. 오리나 거위, 메추리, 양, 말 뭐 누구는 다른가. 그런데 유난히 개에만 예민한 것 같아서 좀 어색하다.

 

개를 열악한 환경에서 키워서 도살하는 게 문제라면, 개뿐만이 아니라 소, 돼지, 닭 등 모든 식용을 목적으로 키워지고 일정 시기가 지나면 생을 마치게 하는 모든 동물들에 대한 태도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이든 인식이든.

어차피 안 먹고 살 수는 없으니까.

 

비건이 되려고도 해봤다. 불가능하다. 너무 까다롭고 유난떠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사실상 불가했다. 남들이 보는 것 신경쓰지 말고 나는 내 갈길을 가리라 생각하며 살자 했지만, 같이 식사하러 갈 곳이 별로 없다. 맨날 샐러드랑 두부만 먹어야 해.

근데 한편으로는 콩이든 풀이든 채식을 할 때도 식물의 뿌리까지 뽑아 먹는다면 그들의 생명을 섭취하는 건 매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국은 또 인간은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 하냐,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동식물을 먹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배움이 얕아서 도저히 답을 모르겠다.

 

살면서 사실은 사람과의 이별보다 동물과의 이별이 더 아팠다. 카라, 아툼, 몽, 나나를 보내면서, 십년이 더 지난 이별에도 여전히 그리움은 남는 그들과의 시공간이 나를 얼마나 성숙하게 하고 얼마나 자라게 했나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배움이 부족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린다.

 

얼마 전,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실컷 다룬 드라마를 보았다. 노인, 임신한 청소년, 장애인 등등. 보는 내내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약자들의 삶을 일부러 더 조명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예찬받는 요즘의 문화예술계가 좀 웃기게 느껴지기도 했다. 약자들을 돕고 약자들에게 관심가지는 게 마치 지성인의 의무인양 여겨지는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그래서 동물의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게 지성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교양인양 여기는 게 영 불편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인권만큼 동물권이 하나의 이슈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된 건 놀랍고 감동적이기도 하다.

 

동물원에 못 간지 꽤 됐고, 수족관에서 정형행동을 하는 물고기 하나를 보고 울어버린 후로 그 좋은 곳엘 못 가고 있다. 수많은 행복한 아이들과 가족들 사이에서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내가 너무 우스워서 이제는 가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는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꼭 갈 수 있었음 좋겠다. 그리고 걔네 모습을 보면서도 울보 찔찔이가 되지 않고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저기서 보호받고 사니 그나마 다행이지, 먹을 거 찾느라 고생 안 해도 되고, 천적한테 위험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야..라고 마음의 짐 같은 것 없이 가볍게 다녀올 수 있었음 좋겠다.

 

그리고 제주도에 가면 말도 한 번 타보고 싶다. 죄책감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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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엔가 이런 글을 써 놨더랬다. 한동안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글을 쓰지 않았는데 오랜만이었다.

카라와 케어, 그리고 동자연에서 복날 개식용 반대 캠페인에 참가해달라는 단체 공지문자가 왔었다.

그리고 나는 여러 가지 생각에 빠졌다.

모르겠다. 어렵다. 그리고 나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 그게 내 결론이었다.

..내년으로 미루자. 내년엔 내가 좀 더 자라서, 더 나은 답을 찾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