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 개는 어떤 동물병원에 있었다.
혹시 원래 주인이 찾아가지 않았다면 데려오고 싶다고 입양 문의를 했다.
너무 어리고 딱 봐도 사람 손을 놓친 것 같았으니까.
사실 닮았다. 내 강아지랑.
며칠을 망설이고 다시 보고 이러지 말자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다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서는 내 전화번호와 이름을 받아 적었다.
내 앞에 대기자가 여러 명 있는데, 그 사람들이 입양을 원하지 않으면 연락을 드리겠단다.
기다렸다. 주인이 찾아가기를. 그래서 사진 옆에 ‘귀가’라는 말이 붙기를.
기다려도 사진 옆에 ‘귀가’했다는 공지는 붙지 않았고, 사람이 그렇게 많이 산다는 파주 지역인데,
주인이 안 찾아갔고, 게다가 공고 기간도 끝났다.
오늘, 공고 기간이 끝나는 날.
혹시나 해서 병원에 연락을 했다.
공식적으로 오늘부터는 ‘보호’ 기간이기 때문에 유기견의 소유가 전 주인에게서 국가로 넘어오는 날이니까.
왜 아직 사진 옆에 ‘귀가’나 ‘입양’이라는 표현이 뜨지 않는 것인지.
주인이 찾아간 것인지..
혹시 대기자가 데려갔는데 공지를 띄우지 못할 정도로 바빴던 것인지 물었다.
그런데, 병원은 무책임했다.
내 앞에 대기하던 사람들이 인계를 거부하여, 오늘부터는 개별 보호소로 넘겨지는데, 사설 보호소란다.
사설 보호소 시설 뻔한데. 건강한 아이도 거기 가면 가정에서만큼 사랑받고 보호받기 어렵다.
그게 현실이다.
수도 없이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또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기가 참 어려운데..
게다가 환경이 자주 바뀌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지 뻔한데.
단체 이름을 알려주며, 그 사람들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으니 알아서 검색해서 전화해보란다.
전화번호 알려달라니까 모른단다..
아..전화번호도 모르는 사이끼리 유기동물을 주고받으시는구나..
불쾌하지만 일단 지금은 내가 을.
아직 그 개는 병원에 있다고 했다. 곧 보호소로 넘겨진단다.
..이따 일 마치고 바로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그래도 이제는 소유가 보호소로 넘어갔기 때문에 법적 소유주가 보호소니까 그쪽과 연락해서 얘기하란다.
자기네 병원에 있긴 하지만 이제는 그 개의 소유는 보호소란다.
보호소에 이야기해야지 자기네는 이제 무관하단다..
아, 무책임한 데다 법도 아주 잘 지키셔.
어쩜 그렇게 법을 잘 지키시는지.
지난 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병원에서는 아직 공고 기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강아지를 내줄 수 없다 했다.
혹시 주인이 찾아올 수 있으니까 내줄 수 없다 했다.
그 주인은 총 5마리의 이유식 단계의 강아지들을 버렸다.
그런 주인이 혹시라도 다시 와서 내놓으라 할 수 있으니까 못준단다.
법 참 잘 지키시네.
먹을 건 어떻게 하느냐 물었다.
사료를 물에 불려 으깨어 먹인단다.
우리 아이들 키울 때 해 봤던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
으깨서 제대로 먹는지 확인하며 줘야 하고, 잘 못 삼키면 물을 더 부어서 삼키기 좋게 해 줘야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지.
혹시 지금 데려와서 이유식부터 내가 해주고 싶다 했다.
안된단다. 공고 기간이니까.
역시 그들은 법을 참 잘 지키고 계셨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한 마리씩 ‘자연사’ 했다고 아이들 상태가 바뀌었다.
난 최후의 선택으로 병원비를 다 부담할 테니 강아지 데려가도 되느냐 물었다.
하나라도 살려보고 싶었다.
잠시 얘기 좀 해 보고 연락준다더라.
돈 얘기 나오니까 고민이 좀 되시니?
그래도 안 된단다. 아직 공고 기간이니까.
아.. 그들은 역시 법을 준수하는 의식이 참 강했다.
결국 강아지들은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분노했지만, 분노를 풀 곳은 없었다.
그들은 무책임했지만 보조금을 받았을 것이고, 혹시 문제 제기가 된다면 강아지 상태가 원래 안 좋았다고 변명할 수 있을 테니까. 손해볼 것 없었겠지.
묻고 싶다. 왜 그렇게 법에 매달렸냐고.
당신네들이 거기서 얼마나 밥을 잘 챙겼고, 얼마나 아끼고 쓰다듬으며 애정을 주었는지도 묻고 싶다.
물론, 내가 데려왔다고 살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생명체에게 그러면 안됐다.
포기되지 말았어야 할 아이들이었는데.
좀 더 간절하게 옆에 붙어 먹이고 재우고 쓰다듬어주며 애정을 쏟았다면 어쩌면 살았을 수도 있는데..
적어도 오설이랑 오돌이를 데려올 때는
‘공고’ 기간이었지만, 버려진 강아지, 주인 없는 강아지라고 생각해서인지 문의하고 하루 이틀 사이에 데리고 올 수 있었다.
그 수의사 선생이 유기견을 개농장에 팔아먹은 파렴치한 행동만 하지 않았더라면
참 존경받을 만한 인간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융통성도 있고. 그래서 적어도 이 부분은 고맙다.
보호소에서는 돈을 요구했다.
난 솔직히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시설들에 돈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물론 내가 지금 지지하고 있는 시민 단체에도 불투명한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잘 운영하고 있는 시설도 분명 있겠지만.
유기동물 장사하는 것 같아서 좀 심란했다.
단체로 인계되었더라도 보호소로 넘어 가기 전에 데려오고 싶다 말했다.
그랬더니 일단 돈부터 요구하는 것.
하..있어도 주기 싫어졌다.
중성화든 예방 접종이든, 우리 집에서 키울 거니까 내가 알아서 판단하고 내가 가는 병원에서 알아서 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일단 자기네 통해서 중성화 등등을 해야 하니 돈이 든다.
최근에 서류 복잡해진 거 알지?
거기에 당신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이 개를 키울 건지, 글을 써 내라..
왜 병원에서 바로 문의하던 사람들에게 넘겨주지 않았냐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예쁜 개는 문의가 많은데,
공고 기간 중에 병원에서 누구에게 분양해야 파양 안될지 모르니까
끝까지 끌어 안고 있다가
결국 공고 기간을 채우면 보호소로 보내서 그때도 관심 가지고 입양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입양을 시켜준다..라고.
씁쓸했다.
결국 서로를 믿지 못해 일어난 일.
그리고 입양 후 파양이 있을 수도 있는 일.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나는 병원에서 개의 공고기간이 끝나 유기견 보호소로 넘어간다는 소릴 듣고 이성을 잃었었다. 잠시.
그리고 이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따 집에 가서 부모님과 한 번 더 이야기를 해 볼 것이다.
이렇게라도 만난 게 인연인가 생각하며 데리고 올 것인가를.
그 녀석이 있는 곳은 검색해보니 우리 집에서 통행료 빼고 택시비만 11만원이다..멀구나..
하..진짜 심란하다.
지난 번 돌설이 데려왔을 때도 하남에서 개농장과 연관된 사람인지 의심받았는데,
이번에도 유기견을 재유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은 게.
하긴. 개를 키우는 사람은 개 유기가 가능한 잠재적 범죄자이기도 하다.
이 아이를 오늘이라도 기적처럼 누군가가 데려갔으면, 혹은 줄을 놓친 주인이 헐레벌떡 찾아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아무 고민 하지 않고, 와..이 아이도 입양 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데려오고 싶었지만, 데려올 수 없었던 아이들은 모두 병원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또 다른 죽음 앞에 나는 무력했고, 그래서 목구멍이 아린다..
이 세상에 다시는 태어나지 말거라..
..날씨가 좋지 않아서 기분이 좋지 않은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참 힘들다..
그래도 난 동물보호단체들을 지지하고 후원하며 모든 생명이 그 가치를 존중받을 수 있는 이상적인 날이 오기를 기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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