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아산역 명칭 갈등 사례
지방자치가 20년을 넘어서며 지역 간 갈등의 폭은 깊고 넓어지고 있다. 특히, 개발에 따른 물질적 가치뿐 아니라 역사 명칭 같은 무형의 재화도 지역 간 갈등의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간 유·무형 재화의 분배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복잡해질 수록 이를 조정·관리할 수 있는 상급 기관의 역량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경부고속철도 천안아산(온양온천)역 명칭 선정 갈등’은 충남도에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역명 선정에 대한 법·제도적 절차가 부재한 가운데 중재자로 나선 상급 기관인 충남도가 갈등 관리 능력 부재를 보이며 지역 간 갈등을 조장한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사업 주체인 건설교통부 역시 편향적 시각을 보이며 이해 당사자인 아산시로부터 신뢰를 확보하지 못해 갈등을 가중시켰다. 갈등조정에 있어 비전문적이고 준비되지 못한 제3자의 역할은 오히려 지역 간 이해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번 사례를 조명해 봤다.
◆갈등 발생 배경
1980년대 급증하는 교통량과 물류난을 해소하기 위해 경부축을 중심으로 한 경부고속철도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천안아산역 건설 논의가 시작됐다. 새로운 교통수단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정부는 1983년 ‘경부축의 장기 교통투자 및 서울~대전 간 고속철도 타당성 조사’를 실시했다.
이어 1987년 경부고속철도사업을 선거 공약으로 내건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며 1989년 5월 경부고속철도건설사업 추진이 확정됐다. 정부는 같은 해 5월 고속철도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1990년 6월 경부고속철도 건설 기본계획을 수립 후 건설 사업에 착수했다.
충남도 아산시 배방면 장재리 305번지 일대 마련된 천안아산역은 역사는 대지면적 8만 7704㎡, 건축면적 2만 2234㎡, 연면적 3만 3560㎡로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지난 1999년 1월에서 2003년 6월까지 5년여에 걸쳐 완공됐다. 천안아산역의 주요 연계 권역이 예산과 조치원, 충북 청주, 청원, 안성 등에 이르고, 장항선과 경부선이 연계되며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이와 관련 천안아산역 개통에 의해 지역 생활권 및 경제 규모 성장에 큰 기여를 할 것이란 기대가 일며 역명에 대한 이해관계가 대립하기 시작했다.
◆갈등 전개와 불완전한 봉합
당초 천안시와 아산시는 서로 인접한 자치단체로 역명을 둘러싼 갈등이 있기 전까지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1990년 6월 경부고속철도 기본계획에 역사 명이 ‘천안역’으로 반영되며 논란이 점화되기 시작했다. 역사 건물 대부분이 아산시에 소재했기 때문이다. 당시 아산시 의회는 “고속철도가 아산지역을 통과하기 때문에 천안역 명칭 사용은 부당하다”며 속지주의에 입각한 명분을 내세웠다. 이어 아산시 의회는 아신시민을 대상으로 아산역명 쟁취를 위한 가두서명 운동을 전개하는 등 지역 쟁점으로 부각 시켰다. 특히, 1995년 1월 행정구역 개편으로 역사가 들어선 온양시가 아산시로 통합되며 역사 명칭 문제가 본격 거론됐다. 같은 해 11월 아산시의원과 지역단체들은 ‘경부고속철도 아산역세권 개발추진위원회’를 구성, 건설교통부 등 정부에 아산역으로 역명을 변경할 것을 건의하자, 정부는 천안역 대신 경부고속철도 4-1공구역 사용을 통보했다. 그러나 정부는 고속철도에 대한 국내외 홍보를 위해 역사명칭을 조속히 확정하기 위해 2000년 8월 충남도에 의견제시를 요청했다. 같은해 9월 아산시는 아산역명추진위원회를 구성, 충남도에 아산역 지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천안시 역시 2000년 10월 천안전통문화연구회와 천안시개발위원회 명의로 천안역 확정을 충남도와 정부에 강력 건의했다. 역사 주변 지역인 배방면 장재리 일부 주민들도 천안역 명칭 확정을 촉구하는 건의서를 충남도에 전달했다. 충남도는 2000년 10월 도지명위원회를 열고 장재역을 최종 역명으로 선정, 정부에 제출했다.
반면 정부는 장재역이 대외적 인지도가 낮고 천안의 반대를 이유로 역명 재검토에 들어갔다. 건설교통부는 결국 역명 선정을 위해 2003년 2월 관계기관 및 지자체의 추천을 통해 자문회의를 구성하고 양 지방정부의 합의점 도출을 위해 노력했다. 2003년 3월 25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3차례의 회의를 진행하며 양 지역간 합의를 이끌어 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아산시는 자문위원회에 건교부 산하 임직원의 참여와, 회의 진행 중 현장 답사를 묵살하고 천안정거장이 표시된 도면을 제공하는 등 건교부의 중립성에 심각한 우려감을 표하고 있었다. 자문위원회는 2003년 4월 열린 3차 회의에서 역명 선정을 위해 무기명 투표를 진행했으나, 아산시 대표는 불참으로 대응했다. 아산시 대표가 없는 가운데 치러진 무기명 투표 결과 최종 역명은 천안아산역으로 결정됐다. 이에 아산시는 같은해 8월 관할 행정구역 내 위치한 역사 명칭을 타 자치단체 명으로 호칭되는 것은 속지주의 원칙을 무시한 것이라며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결국 조정위원회는 2003년 10월 22일 아산시 주민 1만 9056명이 참여한 투표를 실시해 현재의 명칭인 ‘천안아산(온양온천)역’으로 명칭을 조정했다. 한편 아산시는 이에 대해 헌법소원과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2006년 2월 대법원에서 원고패소판결 원심이 확정되며 ‘천안아산(온양온천)역’으로 역명이 최종 확정됐다.
◆역명칭 갈등의 시사점
첫째, 역명칭 갈등은 역사의 ‘입지’가 아닌 ‘역명’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놓고 발생한 지역 간 갈등이다. 지방자치 시대가 진행되며 물질적 자원배분에 대한 갈등은 다양하게 발생했지만 무형 가치에 대한 갈등 요인도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금강하굿둑을 둘러싼 갈등은 일단 금강 하구역의 수질개선과 용수 확보와의 자원 이용방식을 둘러싼 갈등 이지만, 다른 형태의 새로운 가치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갈등 해소를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가 요구된다. 역명칭 선정이 규정 법률이 부재한 가운데 관례에 따라 이뤄지다보니 역명선정에 대한 명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상급 기관인 충남도와 건교부의 소극적이고 편향성있는 대처는 갈등을 오히려 조장하는 결과를 보였다.
셋째, 상급 기관의 전문적이고 역량있는 갈등조정 능력도 중요하다. 역명선정에 있어 권한이 있는 충남도는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장재역이라는 중립 명칭만 고수했다. 양 지역간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보다, 회피하려는 행위는 오히려 상급 기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갈등 조정을 위한 도 차원의 능력 함양과 법과 제도적인 지원이 절실하며 갈등 조정을 위한 지속적이고 권위 있는 단체를 구성하는 것도 요구된다.
물론, 금강하굿둑을 둘러싼 갈등은 충남도와 전북도, 서천과 군산 등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으로 충남도가 적극 중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역명칭 선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을 경험삼아 볼 때 지역 간 갈등이라는 점에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출처] [금강하굿둑을 둘러싼 지역갈등 해소방안 모색] 4 천안·아산역 명칭 갈등 사례|작성자 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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