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브라더의 독재를 다루는 "1984'에 대해 소개합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함께 읽어보면,
이상 사회를 꿈꾸었던 '유토피아'와
이상 사회의 반대인 '디스토피아'를 논하는 '1984'의 세계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1. 작가 소개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이고, 1903년 6월 25일, 인도의 벵골 주 모티하리에서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사립예비학교에 들어갔으나, 이곳에서 상류층 아이들과의 심한 차별을 맛보며 우울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튼교에서의 학창시절 역시 계급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22년부터 5년간 미얀마에서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했으나 점차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껴 직장을 그만두고 파리로 건너가 작가수업을 쌓았다. 유럽으로 돌아와 파리와 런던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고 잠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거쳐 영국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조사 활동에 참여했다. 이때를 토대로 한 소설이 1933년의 첫 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생활』과 1935년 『버마 시절』이다.
전체주의를 혐오한 그는 스페인 내전에도 참가했는데, 그 체험을 기록한 1936년 『카탈로니아 찬가』는 뛰어난 보도 문학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에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을 우화로 그린 『동물농장』으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해 그는 아내를 잃고 자신도 지병인 폐결핵의 악화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그 와중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전체주의의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년』을 출간했다. 『1984년』은 전제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놓인 한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다가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 그 과정과 양상, 그리고 배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의 극한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나라이다. 오세아니아의 정치 통제 기구인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한편, 정치 체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하여 당원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당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당원들의 사상적인 통제를 위해 과거의 사실을 끊임없이 날조하고, 새로운 언어인 신어를 창조하여 생각과 행동을 속박함은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까지 통제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런 당의 통제에 반발을 느끼고 저항을 꾀하지만, 오히려 함정에 빠져 사상경찰에 체포되고, 혹독한 고문 끝에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 '골드스타인'을 만났다고 자백하고, 결국 당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1984년』은 오웰을 20세기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날로 악화되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작품을 발표한 이듬해인 1950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지 오웰은 지난 1999년 영국 방송 BBC가 조사한 ‘지난 1천 년간 최고의 작가’ 부문에서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에 이어 3위에 선정되었다. 게다가 영문학에서는 ‘오웰주의’, '오웰주의자'라는 뜻의 Orwellism이나 Orwellian이라는 표현이 따로 있을 정도이니, 이 정도면 그가 서양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주로 당대의 문제였던 계급 의식을 풍자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였으며, 또 일찍이 스탈린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거기서 다시 현대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는 악몽과 같은 전체주의의 풍토를 작품에 정착시켰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자신의 글 중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쓴 글들만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2. 책 소개
조지 오웰이 최후로 쓴 디스토피아적 정치소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문학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 조지 오웰의 대표작 『1984』.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가상의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인간성을 지키려는 마지막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독재의 화신 '빅 브라더'에 대항하며 인간 정신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지구 최후의 남자를 통해 인간 미래에 대한 절망과 그에 대한 경고를 전해준다. 출간 당시부터 언론의 찬사를 받았던 이 작품은 관련 용어가 사전에 등재되고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인용되는 등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또한 정치와 사회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텍스트로서 현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 꼽히기도 한다.
3. 연관 진로
인문, 사회, 자연계열 등 모든 단과대학, 학과에 유효하지만, 정치외교학과, 행정학과, 사회학과 연관성이 높고, 신문방송학과, 언론학부, 사학과, 철학과 등과 연관성이 있음.
<유토피아(토마스 모어)와 디스토피아(1984의 세계)>
디스토피아(Dystopia)는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가상사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사회는 주로 전체주의적 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통제받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단어는 존 스튜어트 밀의 의회 연설에서 처음 쓰인 단어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그리스어 지식을 바탕으로 이것이 ‘나쁜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언급했는데, 이것은 dys(나쁜)와 topos(장소)가 결합된 단어이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유토피아'라고 한다면 '디스토피아'는 모든 사람이 불행한 세상을 말한다. 부유층, 빈곤층, 우파, 좌파, 노년층, 청년층 등 가릴 것 없이 모든 계층의 행복지수가 현저히 떨어진 세상이다. 예를 들어 현대의 스마트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의 등장과 유행은 정보사회의 양면성을 부각한다. 사이버 공동체에서 누구든지 쉽게 연결되고 타인과의 연대와 정보 생산 및 유통, 소비가 자유롭다는 점은 장점이겠으나, 인간의 소외감을 증대시키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욕설과 상호 비방으로 인한 심리적 상처는 단점이 된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정보사회가 정보로 인해 풍요로운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의 한편, 모두가 불행한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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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중 문제
1. 윈스턴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설명하라. (윈스턴, 오세아니아, 2분 증오, 텔레스크린, 골드스타인 등을 활용하여 설명)
2. 빅브라더(B.B.)는 ‘2분 증오’와 ‘골드스타인’을 활용하여 사회적으로 어떠한 효과를 얻고 있는가?
3. 아이들에게 이루어지는 교육은 어떠한 효과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4. 윈스턴의 직업은 무엇이며, 그가 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5. 사람들이 실제로는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넉넉한 삶을 살게 했다고 생각하여 빅브라더에게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6. 사회 체제에 저항하던 윈스턴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7 이 책은 1949년에 쓴 것으로, 당시 조지 오웰이 상상했던 1984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로부터 또 35년이 흐른 2018년의 모습은 조지 오웰의 상상 속 세상과 얼마나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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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문제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해보자.
(가) 로봇 기술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 주는 로봇 덕분에 미래 사회는 보다 편리하고 풍요로운 세상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이와 반대로 보다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사람들은 미래에는 로봇이 인류를 지배하고 지구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극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미래에 로봇이 전적으로 인간의 도구로만 사용될지 혹은 인간의 지배자가 될지는 아직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나) 가혹한 형벌이 시지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데스는 명계에 있는 높은 바위산을 가리키며 그 기슭에 있는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라고 했다. 시지프스는 온 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바위는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굴러 떨어져 버렸다. 시지프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하데스가 “바위가 늘 그 꼭대기에 있게 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시지프스는 영원히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다.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영겁의 형벌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번번이 결과는 마찬가지지만, 시지프스는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
[문제] (나)를 참고하여 (가)에 나타난 인간과 로봇의 관계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이야기하시오.
-> 이 문제는 고려대 면접 기출 문제입니다.
조금 어려운 문제를 골랐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잘 풀어냈어요.
우리나라 고1의 사고 수준이 생각보다 높습니다. ㅎㅎ
[문제] 해설
이 문제는 고려대 면접 기출 문제 중 하나로, 제시문 (나)의 시지프스 신화를 바탕으로 '하데스'와 '시지프스'의 관계를 분석하고 이를 제시문 (가)의 인간과 로봇의 관계에 적용하여 미래 사회의 변화를 판단하고 예측하는 과정을 통해 논리적 사고력과 응용력을 확인하고자 한다.
이 문항은 인간의 자율성, 노동의 의미에 대한 지원자의 가치를 묻고 과학 기술의 발달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도록 한다. 제시문 (나)의 각 인물의 입장을 제시문 (가)에 적용하며 ‘과연 인간은 기술의 주인인가?’라는 질문에 답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제시문 (가)는 로봇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 사회 인간 삶의 변화에 대한 내용이다. 로봇이 미래 사회의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가져올 것이라는 난관적인 전망과 로봇이 인류를 지배하고 인류가 아니라 로봇이 주체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동시에 소개하고 있다. 로봇이 미래에 인간의 도구일지 지배자일지에 대한 의견 대립이다.
제시문 (나)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스의 신화로, 명계의 신인 '하데스'가 '시지프스'에게 명계의 바위산 꼭대기까지 영원히 바위를 밀어 올리라는 벌을 내렸다는 이야기로 '개인의 선택권과 자율성'에 연관된 내용이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건국대 논술 기출 문제 가운데
다음의 문제를 풀어보면 좋습니다.
[문제 1] [가]와 [나]의 관점에서 [다]에 제시된 측정결과를 분석하시오.
[문제 2] [가]와 [나]의 주장을 비교하고, 이를 바탕으로 [라]의 인물 ‘사임’의 주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가] 언어의 부재가 곧 사고의 부재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참으로 그러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언어의 부재는 침묵을 의미한다. 언어가 끊길 때 침묵만이 깃들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의 의식 세계에서 언어 작용이 중단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침묵은 다만 소리가 나는 언어 행위의 부재를 뜻할 따름이다. 그러한 침묵 속에서도 언어 행위는 수행될 수 있다. 말없이 생각을 할 때도 그러한 생각은 언어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가. 눈을 감고 내가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고 하자. 이때 나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은 소리는 없지만 분명 말들의 연속일 것이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것에 적합한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례가 비언어적인 수단에 의한 생각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일까? 오히려 말이 떠오르기 전까지는 내가 생각하는 것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나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만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 그것을 명료하게 생각하지 않은 상태에 있음을 뜻한다. 생각이 안개처럼 모호한 것이다. 따라서 생각하는 느낌이 있다고 해서 이를 언어 없이 사고가 수행되는 사례로 보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 고등학교 ‘국어생활’ 교과서
[나]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철저하게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언어상의 차이가 다른 모양의 사고유형이나 다른 모양의 행동양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색깔에 해당되는 말이 그 언어에 없다고 해서 전혀 그 색깔을 인식할 수 없는 것일까? 해당 어휘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그 어휘가 지칭하는 대상이나 개념을 더 빨리 인식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해 주기는 하겠지만, 해당 어휘가 없다고 해서 그 대상 자체에 대한 인식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은 있으되, 그 생각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없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으며, 더구나 생각이 오묘하고 신비한 수준에 이르면 언어는 이를 곡진하게 나타내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의 사고가 우리의 경험 세계를 상이하게 범주화한 우리의 언어에 의해 많은 제약을 받고, 주어진 단어에 의해서 지칭되는 개념에 대한 사고가 명확한 어휘가 없을 때보다 있을 때가 쉬운 것은 틀림없지만, 그러한 사실이 얼마만큼 중요하며 의미가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 고등학교 ‘국어생활’ 교과서
[다] 다음은 비슷한 연령대(20세~25세)에 있는 동일 국적의 성인 남녀 네 사람(A, B, C, D)의 몇 가지 인지능력을 측정한 결과를 도표로 제시한 것이다. 도표의 수치는 100점을 만점으로 했을 때, 네 사람이 측정항목 별로 획득한 점수를 나타낸 것이다. 인지능력 측정은 동일한 측정 도구를 이용하여 진행하였으며, 측정 환경에 차이를 유발할 수 있는 변수들을 최대한 통제하여 측정 대상자들이 거의 같은 환경에서 측정에 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
[라] “찾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여기 있군.” 누군가 윈스턴 뒤에서 지껄였다. 그는 돌아섰다. 조사국에서 일하는 친구 사임이었다. ‘친구’란 말이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에는 친구란 건 없고 동무만 있다. 그러나 동무 사이에도 남보다 좀 더 친한 동무가 있는 법이다. 그는 언어학자로, 신어(新語, Newspeak) 전문가였다. 현재 신어사전 제11판을 편집하는 큰 편집위원회의 일원이다. 그는 윈스턴보다 몸집이 작고 머리는 큰 데다 툭 튀어나온 커다란 눈은 슬퍼 뵈기도 하고 비웃는 것 같기도 한데, 얘기할 때는 상대방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중략) “사전은 어떻게 돼가나?” 윈스턴이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럭저럭. 난 형용사를 맡았는데 무척 재미있어.” 사임이 말했다. 그는 신어 얘기가 나오자 얼굴이 즉시 밝아졌다. 그는 스튜 접시를 밀어놓더니 섬세하게 생긴 손으로 한쪽은 빵덩이를, 다른 쪽은 치즈를 들고 소리가 잘 들리도록 몸을 식탁 쪽으로 기울이고 말했다. “제11판이 결정판이지. 지금 이 신어를 마지막으로 손대고 있는데 그러면 다른 말을 쓰지 않아도 돼. 이 일이 다 끝나면 자네 같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지. 감히 말하네만 자네는 우리의 주된 업무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천만에! 우린 말을, 하루 수십, 수백 마디 어휘를 없애고 있다네. 뼈만 남도록 잘라내는 셈이지. 제11판에는 2050년 전에 없어질 말들은 하나도 수록하지 않네.” 그는 허기진 듯 빵덩이를 덥석 물고 두어 번 꿀꺽 삼키더니 다시 현학적인 정열로 말을 계속했다. 마르고 시커먼 얼굴에는 생기가 돌고 눈에는 비웃는 표정이 없어지고 거의 꿈꾸는 듯 빛나기 시작했다. “말을 없앤다는 건 멋있는 일이야. 물론 버려야 할 말은 동사와 형용사에 많지만 명사도 수백 개는 되지. 없애는 건 동의어뿐이 아니지. 반대어도 있어. 도대체 단어란 게 단순히 다른 말의 반대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 낱말에는 그 자체 내에 반대어가 포함되어 있네. 예를 들어 ‘좋다(good)’라는 말을 생각해 보게. ‘좋다’라는 말이 있으면 구태여 ‘나쁘다(bad)’는 말이 필요하겠나? ‘안 좋다(ungood)’로 충분하지. 아니, 오히려 그게 다른 말보다 더 정확한 반대어라 할 수 있지. ‘좋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고 싶을 때, ‘훌륭하다(excellent)’느니, ‘멋있다(splendid)’느니 하는 따위의 말들이 필요할까? ‘더 좋다(plusgood)’라는 말이면 충분하고 그걸 더욱 강조하고 싶으면 ‘더욱더 좋다(doubleplusgood)’로 하면 되지. 물론 이런 형태의 단어를 이미 쓰고는 있지만 신어사전 최종판에서는 이 말 한 마디만 남을 걸세. 결국 좋다는 것과 나쁘다는 것에 대한 모든 개념은 다만 여섯 개의 낱말로, 실제로는 단 하나의 낱말로 표현되는 거지. 멋있지 않나, 윈스턴? 물론 이건 애초에 대형(Big Brother)의 아이디어야.” 그는 군더더기를 덧붙였다. 대형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윈스턴의 얼굴에는 흥미없다는 듯한 표정이 스쳤다. 그러나 사임은 윈스턴이 신어에 대한 열의가 없는 것으로 재빨리 알아차렸다. “윈스턴, 자네는 신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 사임은 맥이 빠져 말했다. (중략) 사임은 흑빵을 한입 뜯어 씹고는 말을 계속했다. “신어의 목적이 사고의 폭을 줄이는 것이란 걸 알고 있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思想罪)도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만들거야. 왜냐하면 그걸 표현할 말이 없어질 테니까. 필요한 개념은 단 한 마디 말로 표현되며 그 말은 정확히 정의되어 다른 곁뜻은 없어져 버리고 말지. 제11판에서 우리는 벌써 그 정도로 해 놓았어. 그러나 그 과정은 자네나 내가 죽고 난 뒤에도 계속될 거야. 한해 한해 어휘는 줄어들고 그럴수록 의식의 한계도 좁아지겠지. 물론 지금에도 사상죄에 대한 이유나 구실이 있을 수 있지. 그것은 단순히 자기훈련이나 현실통제를 못하기 때문이야. 그러나 결국 그나마 필요없게 돼. 혁명은 언어가 완성될 때 완성돼. 신어는 영국사회주의고, 영국사회주의는 신어야.” 그는 은근히 만족한다는 듯 덧붙였다. “늦어도 2050년까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가?” “글쎄…” 윈스턴은 머뭇거리다 그만두었다. “글쎄 노동자 외에는…” 하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으나 이 말이 비정통주의적인 말이 되지 않을까 해서 그만둔 것이다. 그러나 사임은 윈스턴이 하려는 말을 알아챘다. “노동자는 인간이 아닐세.” 그는 거침없이 말했다. “2050년까지는, 아마 그 전이 되겠지만, 구어(舊語, Oldspeak)에 대한 지식은 모두 사라질 걸세. 모든 과거의 문학도 없어지고 초서, 셰익스피어, 밀턴, 바이런, 이들은 다만 신어역(新語譯)으로만 남을 거네. 그것도 다른 말로 바뀐다는 정도를 지나 원래의 의미와 반대되는 것으로 변할 거야. 당의 문학까지 변할 거야. 슬로건까지 변할 거야. 자유의 개념이 없어졌는데 ‘자유는 예속’이란 슬로건이 있을 수 있겠나? 모든 사상적 분위기도 변할걸세. 실상, 우리가 지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란 없어져 버릴걸세. 정통주의는 생각하는 것, 생각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야. 무의식 바로 그거야.” 조만간 사임은 증발될 것이다. 윈스턴은 갑자기 이런 확신이 들었다. 그는 너무나 지적이다. 그는 너무 명백하게 관찰하고 너무 정확히 얘기한다. 당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젠가 그는 사라질 것이다. 그의 얼굴에 그렇게 씌어 있다. - 조지 오웰, 『198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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