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의 변화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100세 시대’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에 반해 모든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80세 시대를 전제로 운영돼 왔다. 인생 100세 시대의 변화상과 그 대비책을 짚어본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인생 시간표를 여기에 맞추려는 개인들이 늘고 있다. 우선, 일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20대 후반에 취직을 해서 60세에 퇴직한다면 일하는 기간은 30수년인 데 반해 은퇴 기간은 무려 40년이나 된다. 부족한 노후 자금 때문에도 그렇지만, 건강을 위해서나 보람 있는 삶을 위해서라도 퇴직 후에 무슨 일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보다 고령사회를 일찍 경험한 선진국의 퇴직자들은 현역시절에 모아둔 자금이 노후 생활비로 충분치 않다고 생각되면 체면을 버리고 허드렛일이라도 해서 생활비를 벌 궁리를 한다. 또 퇴직 후 기본적인 노후생활비에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취미 활동이나 사회공헌 활동을 하면서 약간의 용돈벌이를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 대표적인 것이 NPO 활동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NPO란 Non-Profit Organization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민간 비영리 조직’ 또는 ‘비영리 활동’ 등으로 번역한다. 선진국에서 나타난 현상이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평균 수명이 70~80세일 때는 ‘공부-취업-은퇴’라는 삶의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인생 100세 시대는 ‘공부-취업-공부-재취업’과 같이 순환형 삶의 방식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100세 시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바뀌어
둘째는 100세 시대를 반영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바뀌고 있다. 우선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의 부양만 바랄 수 없게 됐다. 예전에는 자식 농사만 잘 지어두면 노후는 별 걱정이 없었지만 이제는 부모와 자식이 함께 늙어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노부모 부양 기간이 평균 5년 정도였는데 100세 시대에는 부양 기간이 25~30년으로 늘어난다. 노인이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에 늙은 자녀에게 부양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연금이다.
한국과 미국, 일본에서 60세 이상의 정년 퇴직자를 대상으로 ‘노후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응답자들의 경우 ‘자녀의 도움을 받는다’는 응답이 30%를 차지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40%를 넘었던 비율이 조사를 할 때마다 줄어들고 있다. 반면에, 미국과 일본에서는 연금의 비중이 60~70%로 가장 높았고, 자녀의 도움을 받는다는 비율은 1~2%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10년쯤 후에 이런 조사를 한다면 ‘자녀 도움’의 비율이 미국과 일본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다. 노후의 최저 생활비를 자녀에게 의존하던 사회에서 연금에 의존하는 사회로 바뀌어 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복지 선진국이라고 하면 부자가 많은 나라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부자가 많은 것보다는 대부분의 국민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저 생활비 정도를 보장받을 수 있는 나라가 진정한 복지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노후 준비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부부가 같이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부부가 같이 국민연금에 가입해 60세까지 불입한다면 노후 자금 마련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정주부들의 국민연금 임의가입이 급속하게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인식이 행동으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직장인의 퇴직연금 가입도 급속하게 늘고 있다. 여기에 국민연금과 퇴직연금만으로 부족한 부분은 연금저축, 연금보험과 같은 개인연금에 가입해 보완하겠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100세까지 살지, 110세까지 살지 알 수 없는 이른바, 장수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몇 억 원을 모아두는 것보다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저 생활비 정도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해 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홀로 남게 될 아내를 위한 준비도 반드시 필요
셋째는 의료비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100세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 중 74%가 현재 앓고 있는 질병이 있다고 답했다. 또 고령자들을 돌보는 사람은 자녀와 배우자가 57%로 가장 많았지만, 유료 수발자의 돌봄을 받는 사람도 32%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일본에서도 퇴직 후의 생활비에 대해 조사를 한 결과에 의하면, 퇴직자의 30~40%는 퇴직 후에도 생활비가 줄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의료비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미국, 일본에서와 같은 조사 결과가 발표돼 있지 않지만, 실제로 조사해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의료비는 다른 생활비와 속성이 다르다. 매월 지출하는 생활비는 그 규모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도 없거니와 단기간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다. 따라서 의료비는 일반 생활비와는 달리, 언제 얼마만큼 필요할지 모르지만 일이 생겼을 때 지급을 해주는 ‘보험’을 이용해야 한다. 병원비, 간병비 등에 대한 걱정이 관련 보험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넷째는 여성들이 ‘노후에 혼자 살아야 하는 기간’에 대한 관심의 증가다. 남녀의 평균 수명, 결혼 연령 차이를 감안할 때 확률적으로 10년 정도는 여성이 홀로 살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국민의 노후를 책임질 3층 연금체계는 대부분 남성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의 경우, 20년 이상 가입해야 제대로 된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직장에 다니는 남성이다. 퇴직금이나 퇴직연금도 마찬가지다. 오래 살 확률이 높은 쪽은 여성인데 연금 준비는 대부분 남성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최근 들어 여성들의 국민연금 임의가입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런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집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 종래에는 집이 재테크의 필수 항목이자 사회적 성공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100세 시대에는 넓고 큰 집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금까지처럼 집값이 계속 오르기보다는 오히려 출산율 저하, 핵가족화 등의 영향으로 주택 수요가 줄고 집값도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특히 급속한 핵가족화에 따라 대형 주택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통계청이 실시한 2010년 인구총조사 잠정 결과에 따르면, 1~2인 가구 수는 지난 5년 만에 23%나 늘어나서 824만 가구에 달했다. 전체 가구의 48%를 차지한다. 당초에는 1~2인 가구 비율이 2020년에 가서 47%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이미 지난해에 48%에 달한 것이다. 당초 예측치와 실제 수치 사이에 81만 가구나 차이가 났다. 이것이 최근 전세난의 요인 중 하나라는 견해도 있다. 지난해 이후 중소형 아파트의 전세 가격은 치솟은 반면 대형 아파트의 전세 가격은 오히려 하락세를 보인 것도 이런 현상에서 기인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노부부만 남아있거나 부부가 사별해서 홀로된 경우에 대형·고층 아파트에 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주거 형태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평균 수명이 70~80세일 때는
‘공부-취업-은퇴’라는
삶의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인생 100세 시대는
‘공부-취업-공부-재취업’과
같이 순환형 삶의 방식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다.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장
(한국 경제 매거진 2012. 1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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