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병원에 있어도, 아파도, 예쁘다.
작년 가을이었나,
동네 똥개들이 집에 놀러왔다.
나나는 그때도 잘 듣지 못하고,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대장이었다.
2019년과 2020년의 경계선에서
나나는 이렇게 보신각 종치는 소리를 들어주었다.
나랑 같이.
네 뒷모습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서 찍어뒀는데
어쩜 뒷모습도 이렇게 예쁘냐.
아픈 동안 나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할 때만 제외하고는
이렇게 나나와 함께 있었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를 너의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내 목에 네 목을 얹고 몸에 힘을 풀어 기대는 너랑 같이
텔레비전을 보았고, 그때 뭘 봤는지는 기억도 안나지만
어쨌든 너랑 같이 이렇게 가만히 누워 있는 시간은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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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순간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마음으로 듣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지금은 내 냄새도 마음으로 맡아내는 것 같아
난 네 발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가 참 좋은데
더 다른 말 추가할 것도 없이 그냥 참 좋아서
언제든 너를 보낼 수도 있다는 걸 또 잊고 지냈다
작년 11월 언젠가..한참 바쁠 무렵 이런 글을 썼다.
이 글을 쓰고 며칠 후 나나가 주저앉았다
더이상 네 다리로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왔고
내 눈물 방울에 나나가 일어나는 영화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신은 없다.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신 같은 건 애초에 없었던 거다.
화가 났다가 좌절하다가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 슬퍼졌다.
그리고 며칠 후 나나가 긴 잠에 빠졌다.
만물이 잠든 새벽이었다.
아프다고 소리 한 번 치지 않고 깊은 숨을 내쉬며 나나는 잠들었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잠이라는 걸 알고 나나를 안았을 때는 세상이 다 무너졌다.
그래도 네 마지막이 편안했던 것 같아 다행이다.
부디 하늘나라 무지개다리 건너 아툼이랑 몽이 만나서 한강 뛰듯이 신나게 놀고 있으렴.
조만간 우리 다시 만나는 날 오겠지.
나이가 많았으니 그럴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줬다..
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받았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참.. 세상이 발달하고 이렇게 기술이 좋아졌는데도 나나 하나 못 살리나..
아니면 병원비와 나나의 마지막 2주를 바꾼 것이었을까..
알 길이 없어 답답하다.
안락사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끝까지 매일 병원에 입원퇴원 시키며 약으로 버텼던 이유는
어쩌면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우리 곁에서 좀 더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이었고
안락사 시킬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이기심이었다.
어쩌면 아파 죽겠어도 우리 식구랑 같이 있고 싶을지도 모르는 이 작은 아이에게
주사약 조금으로 편안하다고 포장된 죽음을 줄 수는 없었다.
내 몸 편하자고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는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치만 너무 힘들어서 나나가 이제 그만 보내줬으면 싶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나나는 내가 부르면 귀를 움직였고 내가 안으면 내품에 몸을 맡겼다.
그런 너를 어떻게 보내니
그리고 결국 너는 내게 잘 지내라 인사하고 조용한 잠에 들어주었다.
그 침묵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나가 갑자기 아프고나서는 헤어짐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새기고 또 새겼다.
그래도 어떻게 이별을 견뎌야 하나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견디고 있다.
나나가 급격하게 아팠던 2주 동안은 한 시간을 깊게 자 본 적이 없다 싶을 정도로 선잠을 잤다.
주사, 약, 주사, 약, 미안해.
혹시 아플까 불편할까 내가 필요할까 싶어서 거실에서 쪽잠을 잤고
2층에서 일하다가도 뭔 소리만 나면 후다닥 뛰어내려갔다.
그래서 한동안은 음악도 켜놓지 못했다.
그렇게 다른 일은 간신히 해냈고 온전히 온 마음을 나나에게 쏟았다.
긴 인사 하면서 차분하게 나나가 떠나갈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인지하고 또 확인했다.
그렇게 보내고나니 이제 미련은 덜 남는다.
그치만 여전히 미안하고 보고싶고 그런다.
사랑했고 사랑한다 내 강아지
나나 안녕.
그리고 남은 이야기.
개린이가 개르신이 되는 과정을 함께 한다는 건 진정 축복이었다.
그러나 나나를 보내며 함께 늙어가는 게 행복이면서도 언젠가 올 이별 생각에 겁이 났다.
그치만 난 생각보다 튼튼한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에게는 무지개다리 건넌 내 식구들 외에도 아직 책임져야 할 다양한 연령의 네 마리의 강아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열심히 사료값 벌고 병원비 벌어서 또 언제 올지 모를 이별을 차분하게 준비해야 한다.
이번에도 신에게 빌었다.
내 인생 얼마가 남았든 나나에게 몇 달만 나누어주고 조금 편안한 마지막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처음엔 그 양반 참 내 기도 안들어준다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덤으로 며칠 더 함께 할 시간을 줬나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귀한 내 강아지 데려가신 거 이왕이면 좀 잘 부탁드린다..
아끼던 내 강아지.
먼저 가서 놀고 있으면 언니 갈게.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곧 다시 보자.
못다한 사랑은 그때 해.
나나는 신부전증으로 수액을 계속 맞아야 했고, 그로 인해 심부전증이 왔다.
췌장염이 있었고, 개선이 되기는 했지만,
BUN수치, 크레아틴 수치 등등 온갖 것이 다 최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주나 힘을 내주었다.
사람이나 개나 살다가 늙고, 늙으면 세상을 뜨는 게 이치라지만
그 이치 참 독하다. 그리고 아파 죽겠네.
..부디 반려와 이별하는 모든 사람이 기꺼이 아파해도 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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