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달린 기사를 보는 연예인의 마음이 어떨지 공감되는 일이 있었다.
어떤 파이널 강의에서의 일이다.
강의실에 겨우 몇 명이 있었고, 당시 상담카드를 걷어 확인해보니 논술도 완전 초보자들이 여럿인데다 아는 얼굴이 거의 없어서 매우 쉽게 설명해야만 했다. 그리고 특히 수능 최저를 적용하지 않는 대학에서 출제하는 문학 작품에 대한 반응은 학생들마다 편차가 너무 커서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예년까지 아이들이 사회경제 주제보다 문화예술 주제가 더 어렵다고들 했으니 그쪽에 좀 더 신경써서 강의를 했다. 수능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오는 아이들이 많았던 경험에 기반을 둔 판단이었다.
예술과 시대나 타인의 평가에 대한 그런 내용의 문제를 마주했다.
그때 내 친구가 해외에서 유명 미술관에 갔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작품들을 대강 구경했는데, 누가 피카소 작품을 보았느냐고 묻기에 그런 유명 작품이 있었는지 모르고 봤다며 되돌아가서 다시 보고는, 명작도 별거 없음을 깨달았다더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처음엔 별거 아닌 것으로 보여 그냥 지나친 작품이었는데 피카소가 그렸다니까 갑자기 왠지 멋있게 보이더라는ㅋㅋ, 아니 멋있게 보아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고.. 그래서 본인은 까막눈 같은 눈이었나보다고 남들이 멋있다니 멋있게 봐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더라며,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는 그 친구의 말을 빌려 '전문가나 권위에 기대는 예술 작품 감상의 문제 의식'을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이 학생에게는 이 이야기가 너무 쉬운 것이었거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나보다.
그래서였을까..강의와 첨삭에 대해 혹평을 혹평을..
살면서 이렇게 악담을 받아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학생들이 공유하는 공간에서 일부의 측면을 부풀려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악의에 가득차서 못된 말을 일부러 그렇게까지 담아내는 것은 나에 대해 무엇인가 크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인게지.
나는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강의해야 좋을지 계획하고 어떤 내용을 강조해주어야 할지를 고민했다. 1회만으로 완료되는 강의에서는 첨삭 선생님들께 잘한 건 아주 잘했다고 해주고 부족한 지점에 대해서는 완곡하게 조언해달라 부탁드린다. 딱 한 번 만나는 관계에서는 지속적으로 변화시켜줄 수가 없으니, 최대한 수강생 본인이 가진 능력을 살리고 조언을 통해 빠르게 개선될 부분만 금세 다듬자는 목적이다. 겨우 한 번, 답안지에 몇 마디 쓴 것만 가지고 완벽한 시험 대비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1번의 강의와 답안 작성으로 합격을 희망하는 것 자체가 욕심일 수 있다. 항시 강조하는 바지만, 파이널 1회 강의는 이미 충분히 준비하고 마지막으로 점검하기 위해 수강하는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그런데 듣는 사람은 만족하지 못했고, 그 학생에게도 안좋은 추억이 됐겠지만 나 역시 학생들에게 얼마큼의 조언을 해주고 어떤 학생을 기준으로 강의해야 좋을까를 고민해도 100퍼의 만족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수십 수백명의 아이들이 고마워하고 즐거워하며 나와 시간을 공유하는데 1년에 딱 1~2명이 이렇게 마음을 헤집는다.
기억은 왜곡된다. 자주 나쁜 방향으로. 그래서 나는 잊을 건 잊어버리려고 한다. 누군가는 이랬지만 누군가는 안그랬어.. 이러면서 내게 별거 아닌 존재는 털어내보아야지.
그리고 그 사람이 일부러 이렇게 악담을 일삼는 존재는 아니기를.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만 익명성에 기대어 용기있는 존재가 아니기를.
출석부 확인하고 답안지 글씨체 확인하면 누군지 확인할 방법이 있을 테지만 그렇게까지 쫀쫀한 행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악담을 하고자 했던 존재에게 그렇게까지 관심둘 이유가 없다 싶어져서.
다만 이번 일로 인해 나도 올해는 말을 좀더 조심하고 경청하는 삶을 사는 노력을 해보기로 다짐해본다.
상처가 좀 생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덕스러운 사람으로 살 것이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좋지 않은 사람. 나쁘지는 않은 사람. 어울려 살아가는 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2019. 12.
ㅡㅡㅡㅡㅡㅡㅡ
두어달 이상을 쓸까말까 고민했던 글인데 이제는 털어버릴 때가 된 거 같아 남겨본다.
맨날 몸은 나이는 먹는데 마음은 그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 같아서 좀 걱정이다.
그래도 조금씩 자라자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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