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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미논술CLASS[#논술언니]/논구술면접&시사상식_Archive

[논술언니 지식쿠키] 주제 7: 무력의 정당성(이란vs이스라엘 전쟁)

안녕하세요

대치동 논술언니 조경미쌤입니다^^

 

 

올해는 우리 수험생들의
배경지식 확장에 도움을 드리고자
읽기자료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대신 너무 힘들지 않게,
논술과 면접에서 활용할 수 있는 주요 내용을
‘쿠키’ 하나 먹듯이 가볍게 읽고,
꼭꼭 씹어 삼켜 소화시킬 수 있도록
알려드릴 거예요.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혀
당신들의 합격에 기여할 수 있도록
친절하고 어렵지 않게 이야기해볼게요^^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에요. 국제 정세에 별 관심이 없어서 클릭하지 않고 보더라도 뉴스 헤드라인이나 제목에 이란-이스라엘 전쟁이야기가 있었다는 것 정도는 우리 수험생들도 알고 있겠죠? 그로 인해서 유가, 금값 폭등, 주가 하락 등 경제적으로 파생되는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고요.

 

중동 지역의 전쟁은 수년~십 수년에 한 번씩은 꼭 터지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살면서 전쟁을 직접 목도할 줄은 몰랐습니다.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을 역사서에서 배웠을 때처럼, 무력 전쟁은 국제 질서를 어느 정도 확립한 이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거든요.

 

자세한 역사적 배경까지는 모르더라도 이란이나 이스라엘이 지녀온 역사적 배경과 종교 및 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무력 충돌이 있었다는 것 정도만 체크할게요. 우리는 오늘 이와 같은 국가 간 갈등 상황에 누군가가 무력개입을 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거니까요.

 

그렇지만, 어쨌든 빠른 시일 내에 끝나고 정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는 무고한 시민들, 전쟁터에 나가고 싶지 않은 군인들, 군인으로 자식이나 남편이나 아내를 내보내고 무사 귀환만을 바라는 가족들, 그리고 아이들까지 셀수없이 많은 이들이니까요. 

 


이란·이스라엘 전쟁 공포 세계경제는 초긴장

 

중동 '45년 앙숙' 충돌파장에 촉각

 

이란이 45년 만에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보복 공격하면서 중동전쟁의 공포가 전 세계를 덮쳤습니다. 미국은 주요 7개국(G7) 긴급 정상회의를,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회의를 소집하며 국제사회도 전쟁을 막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였습니다.

 

이란은 지난 13일 자정(현지시간)을 기해 이스라엘을 향해 수백 기의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양국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줄곧 서로를 비공식적으로 공격하는 '그림자 전쟁'을 벌여왔습니다. 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4G7 정상들을 영상으로 소집하고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에 대한 '단결된 외교 대응'을 조율하겠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습니다. 유엔 안보리도 14일 오후 4시 미국 뉴욕 소재 유엔본부에서 긴급 회의를 열고 이번 사태를 논의했습니다.

 

https://www.mk.co.kr/news/economy/10999953


 

우선 테러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입장의 의견을 한 번 살펴볼게요.

 

*테러의 불가피성, 약자에게는 테러로 강자에게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는 입장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공평한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누구든지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군사적, 경제적 강자로부터 부당한 간섭과 억압을 받아 기본적 인권 유린은 물론 최소한의 생존권까지 위협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우리나라 역사 중에서는 일제의 식민 통치에 대항한 독립 운동을 대표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 의해 많은 재산을 수탈당하고, 수많은 인명이 무고하게 살상되어, 이를 막기 위한 여러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약소국이었던 우리 민족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국가는 없었습니다. 반면, 민간인에 의한 자발적인 독립운동 단체들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조선 합병에 앞장선 일본인을 심판함으로써, 대외적으로는 우리 민족의 비극을 만방에 알렸고, 대내적으로는 우리 민족에게 독립의 의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약자의 입장에서 테러는 의거가 되기도 합니다. 테러는 힘이 없는 약자가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선택하는 최후의 저항 수단이 되기도 하므로 무조건 적대시하기만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테러의 잔인성, 보복성과 무고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는 테러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테러 행위가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파괴력과 인명 피해의 정도도 점점 대형화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경시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살상되는 것은 너무나 끔찍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2001911일 미국의 세계 무역 센터, 국방부 등이 한 무장 단체에 의해 테러를 당해 1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혹하게 희생되고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폭력 뒤에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복 폭력이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실제로 테러 피해 국가들은 테러 집단에 보복 공격을 하였고, 이에 대항하는 또 다른 테러들이 벌어져 테러로 시작된 폭력은 악순환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인명이 살상되는 참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생명을 담보로, 그것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불특정 다수의 선량한 시민을 공격 목표로 삼는 행위는 없어져야 합니다. 테러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성균관대에 과거에 기출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유의미한 문제를 하나 풀어보세요.

 

<문제 1> 아래의 <제시문 1>에서 <제시문 4>를 하나의 주제에 관한 상반된 두 입장으로 분류하고, 각 입장을 요약하시오. (분량 자유)

<제시문 1>
수천 명의 희생자를 낸 불시의 폭력은 부조리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폭력은 할 말을 잃게 한다. 현대 사회의 폭력은 일상생활의 편의시설을 이용한 무차별적인 살육이다. 미국과 미국을 공격한 테러리스트 사이에는 압도적인 힘의 비대칭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생쥐가 코끼리를 쓰러뜨린 순간, 펜타곤은 혼란에 빠졌고 월가는 활동을 멈췄다. 중동지역에 미국이 개입해 온 역사는 테러의 역사와 겹친다. 불행하게도 전쟁터에서나 일어나던 파괴와 학살이 거대도시를 무대로 충격적인 규모로 재현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 테러의 책임이 있다는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것은 전쟁이다, 자유를 위협하는 에는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선진국들도 이에 협력을 약속했다. 미국에서는 자국의 안전보장을 지키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국민을 지켜야 한다는 자위전쟁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결국 테러를 억제하기 위한 방법은 강대국의 군사력에 의한 제재밖에 없는 것인가?
폭력은 정의라는 명분으로 이용되어 왔으나,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정치가 지나치게 폭력에 의존하면 그 유효성은 감소하고 파괴성이 증대한다. 폭력이 한번 사용되면 증오심을 매개로 다른 폭력을 불러올 수 있다. 세계를 동시에 연결하는 미디어가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911 테러 이후에 이슬람 과격파가 환호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그러자 인도에서는 힌두교 우익단체가 이슬람을 공격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인도와 대립관계에 있는 파키스탄이 탈레반 세력을 후원하고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족과 종교라는 정의의 색안경을 벗어 버리고 나면 초강대국이나 분쟁지역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소수의 권력자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폭력을 신앙처럼 여겨 온 그들의 욕심이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온 것이다.


<제시문 2>
우리 자신과 가정을 방어하고 우리의 이해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력을 필요로 한다. 이 두 가지 목적은 무력의 다른 모든 측면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것이다. 이는 전시와 마찬가지로 평시에도, 비록 그것이 비용이 든다손 치더라도 무력 보유를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방어와 안전의 추구는 분명한 잠재적 대립에서 비롯된다. 어느 사회나 이해와 우선순위가 다른 사람들 간의 대립으로 만연해 있다. 이른바 국가라는 사회들이 어떤 문제를 두고 상호 대립할 경우, 양측 모두 이를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력에 호소한다. 처음에 지적한 대로 적당한 표현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것을 마찰 전쟁이라고 부른다. 양측의 목적은 모두 각자 나름대로의 평화를 수립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자기 방어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군사력 사용이란 문제 해결을 위한 모든 시도를 다 해본 연후에 취하게 되는 마지막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국가들은 지난 수세기에 걸쳐 이러한 분쟁 문제를 다루기 위한 군사 및 정부 기관과 그것을 처리하기 위한 법률 및 의정서일반적으로 제네바 협정으로 알려진를 개발해 왔다.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교전국들 모두 협정 준수의 요구를 받기는 하지만 동일한 규정으로 전쟁을 할 리가 없다. 실제로 통솔력의 상당 부분을 나름대로의 관점과 나름대로의 방식, 그리고 자기편에는 유리하고 상대편에게는 불리한 규정에 따라 전쟁을 준비하는데 할애한다. 더욱이 일부 스포츠를 제외한 사회적으로 용인된 기타 행위들과 달리 전쟁과 전투는 시합이 아니다. 2등이 되는 것은 지는 것이다.


<제시문 3>
그리스도는 그의 가르침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악에 대한 무저항을 제안한다. 악에 대한 무저항은 사람들의 공동생활의 기초가 되며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악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한다. 우리의 전체 삶을 폭력에 근거하고, 모든 즐거움을 폭력을 통해서 얻거나 보호받는 대신에, 그리고 우리들 각자가 어린 시절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폭력을 당하거나 폭력을 가하는 것을 보는 대신에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에 통감하는 것을 떠올려 보았다. 즉 사람들이 복수라는 것은 매우 저등한 동물의 감정이며, 폭력이라는 것은 수치스러운 행동일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진정한 행복을 앗아가는 것이라고 마음 속 깊이 느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또한 애국심이라는 이름하에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저 국민적 증오심 대신에, 그리고 전쟁이라고 불리는 저 살해에 대한 미화 대신에 그래서 어떤 특정한 나라, 특별한 법, 특정한 경계선, 특정한 땅만을 인정하는 것은 커다란 무지를 보여줄 뿐이라는 사실에 우리 모두 통감하는 것을 떠올려 본다. 그리하여 개개인의 삶이 모든 인간이 진심으로 추구하고 바라는 것이 되고, 모든 사람들은 형제자매가 되어 다른 사람들과 항상 평화를 유지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세상이 주는 모든 혜택을 즐기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제시문 4>
독재 정부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일부의 자국민에게 조직적으로 테러를 가하는 것을 국가 테러리즘이라고 부른다. 이웃 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기는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기를 기다리다가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이라도 발생한다면, 그때의 방관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긴급한 상황이 바로 인도적 군사 개입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언제든지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할 수 있는 경찰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한 국제경찰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출동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그래서 무턱대고 기다렸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면, 이웃한 국가가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설령 그것이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더라도 정당할 수 있다.
부당한 폭력에 의해 탄압받는 시민들에게 군사 개입 같은 외부의 도입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 권리는 무엇에서 비롯할까? 우리에게는 위험에 처한 이웃을 도울 권리는 물론, 의무도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도움을 받을 권리와 도움을 줄 의무가 이러저러한 법률적 주장에 의해 정당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 권리와 의무는 피해자가 도움을 받지 못했을 때에 우리가 느끼게 될 부끄러움에서 비롯한다. 그 부끄러움에서 우리의 의무가 생겨나고, 우리의 의무에서 그들의 권리가 생겨난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위급한 상황에 처한 이웃이 구조되지 않았을 때에 우리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그들과 우리 간의 정서적 연관성일 것이다. 지구적으로 증가하는 상호연관성이 오늘날 집단 학살 같은 일이 일어난 이웃 나라에 우리가 개입하는 것을 의무로 만든다. 그들이 제때에 구조 받지 못했을 때에 느끼게 될 부끄러움이 우리로 하여금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개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문제는 폭력의 정당성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드러내는 제시문들을 폭력이 결코 어떤 경우에도 정당하지 않다는 입장과, ‘폭력이 조건이나 목적에 따라 정당화될 수도 있다는 입장으로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제시문 1>은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정의 실현을 위한 것이라도,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제시문 3>은 폭력은 동물적 분노에 기인한 것이므로, 수치스럽고 진정한 행복을 빼앗아가는 것이라 정당하지 못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한편 <제시문 2>는 무력은 인간이 대립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안전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정당하다는 입장이고, <제시문 4>는 부당한 폭력에 희생당하지 않도록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입장이며, 이는 도덕적 의무이고, 우리는 그러므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는 견해를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제시문 1><제시문 3>, 그리고 <제시문 2><제시문 4>로 입장을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이 두괄문과 각 입장의 간단한 요약 문장을 조합하여 답안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문제 1> 예시 답안

네 제시문들은 폭력의 정당성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 <제시문 2><제시문 4>, 그리고 <제시문 1><제시문 3>으로 나누어진다. <제시문 2>, <제시문 4>는 폭력의 행사가 경우에 따라서 정당화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는 반면 <제시문 1>, <제시문 3>은 폭력의 행사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폭력의 행사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제시문 2><제시문 4>의 경우 우리 사회는 대립으로 만연해 있다고 본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 폭력인 것이다. 이러한 수단으로써의 폭력을 <제시문 2>는 방어와 안전유지를 위한 목적이라는 실질적인 측면에서, <제시문 4>는 상호 연관성 증가로 비롯한 부끄러움이라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
폭력의 행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제시문 1><제시문 3>은 폭력은 단지 어떠한 것의 미화와 명분으로만 이용될 뿐이라고 본다. 이를 <제시문 1>은 소수의 권력자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이용되며, <제시문 3>은 잔학한 행위를 감정적으로 미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용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