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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TORY

장비와 이별합니다

by 경미쌤😍 2017. 11. 6.

 

 

황토색 털을 가진 관우는 그래도 한 번 사람품에 안겨는 주는데,

회색 털을 가진 장비는 이상하게 사람품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강아지보다는 예민한 동물일 것 같아서 관우랑 장비는 사실 품에 잘 안아보지 않았고,

산책 같은 것도 없이.. 정적으로 같이 사는 식구였어요.


청소하다 사진 찍어도 항상 저렇게 멀찍~이 있고.. 서운하게.


그냥 배춧잎 넣어줄 때 조금씩 살짝살짝 만져보는 정도..

사실 처음에 무리해서 안아보려 했다가 팔에 10센티 정도 발톱 자국대로 흉터를 남겼거든요..

솔직히 조금 무서워서 ㅎㅎ 잘은 못 만져봤어요..


그러다가 엊그제, 이상하게 그날 낮에는 마을 곳곳에서 개들이 집단적으로 거칠게 짖었습니다.

혹시 마을에 개농장이 있는 게 아니냐고 어머니께 물어볼 정도로 이상했어요..


새벽 4시 경, 바깥에서 키우는 오돌이랑 오설이가 짖는 소리에, 1층에 있던 나나가 따라서 짖기 시작했습니다.

노령견인 나나가 짖기 시작한 거면, 뭔가 좀 이상한 거거든요..

누군가가 집에 함부로 들어온 거나, 아니면 뭔가 일이 있는 거예요.

이상해서 내려가봤습니다..몽롱했는데..


창밖에 우리 오돌이랑 오설이 실루엣이 보이는 거예요..

새벽이라 달빛뿐이었는데.. 너무 이상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나가보니 오돌이랑 오설이가 집에 그대로 있는 겁니다..

우리 개들이 아니었어요.

너무 놀라 아버지를 깨워 나갔는데, 집 뒤편 장비네 집 근처에서 죽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관우는 아기들이랑 집 앞쪽에서 지내고 있고, 추울까봐 밤엔 비닐을 덮고 위에 덮개도 씌워주는데..

장비는 집에 비닐만 덮어줬거든요..

침입자가 있을 것을 알았다면, 주변에 칸막이를 더 세워줬을 텐데, 부주의했습니다..


들개떼가 장비네 집을, 철망과 펜스로 묶어 케이블타이로 단단하게 묶어둔 그 집을..

세상에.. 물어 뜯었습니다.

새벽에 종종 개들이 짖었으니, 이 들개새끼들이 언제부터 거기에서 장비 집을 뜯고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께서 쫓아가서 벽돌을 던져 장비를 물고 가던 개를 맞추었고,

장비를 내려놓고 도망을 가기는 했는데..

결국 장비는 다음 날 무지개다리 건너 먼 길을 갔습니다.


누구한테든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한때는 우리 식구였던 장비가, 얼마 전 먼 길을 떠났다고.


저한테는 식구였고, 손길을 좋아하지는 않았어도 먹을 거 나눠먹고 응가 치워주고,

가끔은 손길 피하며 후다닥 뛰어가는 모습이 미안하면서도 귀여워서 그 앞에서 교감도 했는데..

그런 아이가 떠났다고. 누구한테든 이야기하고 싶은데..


사실, 이야기 할 사람이 없어요.

내게는 소중했던 생명이어도, 남들한테는 그냥 토끼 한 마리니까요.


주말에 마을 청소하러 나가셨다가 어머니께서 이장님에게 개 떼가 와서 우리 토끼 물어갔다..찾아왔는데 결국 죽었다..고 말씀을 하셨더니,

안그래도 곳곳에서 피해가 있다고 해서, 신고를 해 뒀다..

포획하기 어려우니, 사살해 달라..고 했다.


..사실 저도 장비가 물려갈 뻔..했던 그날,

이 개새끼들. 상놈새끼들..이러면서 할 수 있는 욕이라면 오랜만에 다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새벽 4시에 오열하는 저에게 아버지께서는 한 시간 정도 집 주변을 더 돌아보시고,

저것들 또 올 거라고, 오면 자기가 다 죽여버리겠다고 걱정말라고..

본인도 개 쫓아서 장비 구하려다 넘어져서 여기저기 다치셔놓고..ㅎㅎ

아버지 고맙소. 그래도 장비 온전히 묻어줄 수 있게 해줘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우리 장비를 생각하면, 야생화된 개들을 다 잡아서 죽이든 어쩌든 상관이 없었는데..

야생 들개가 됐든, 사람이 버렸기 때문에 버려진 개들끼리 연합해서 다니든, 걔네도 생명이거든요.

장비를 죽게 한 개들이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내 모습에 진저리를 치다가도


개들을 미워하면 안된다..

그 녀석들도 다 사람이 버렸다.. 누가 버렸든 버림받은 아이들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또 그들이 짠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켜주지 못해서 한 생명 헛되게 보냈다 싶어서 장비에게 미안했습니다.


이별은 언제든, 누구든, 함께 했던 기간과 상관없이 너무 무겁습니다.

매일 오르내리는 계단 옆, 장비의 영원한 쉼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팔 수 있는 만큼 열심히 땅을 팠고,

혹시 야생 동물이 와서 파헤칠까봐 돌을 모아 돌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도시에 살았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다..생각하면,

도시에 살았다면 장비 너를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싶어서,

고개를 저었습니다.

삶과 죽음에, '만약에'란 없으니까요.


어쩌면 주어진 수명의 절반은 산 것 같은데,

어쩜 이별은 이렇게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또 몇 달 지나, 장비가 잠든 자리를 바라봐도 무덤덤해지는 날이 올 겁니다.

그러다 또 눈가가 뜨거워지겠지요.


그래도 그나마 이녀석과의 이별은 조금 덤덤한가봅니다.

며칠만에 이렇게 고해를 하니까요..

온전히 생의 끝까지 누리게 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리고 장비에게 이 세상에 다음 생은 없기를 바랍니다.

하늘나라 어딘가에서 편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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