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17 18:34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희진(가명·여)이의 아빠는 편지 속에서 이 말을 되풀이했다. 지난 13일 새벽 5시 희진이는 먹다 남은 분유 한 통, 그리고 아빠가 남긴 편지와 함께 서울 신림동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됐다. 편지 내내 ‘공주님’ 이라는 표현을 쓰며 아기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던 희진 아빠는 ‘입양특례법 때문에 아기를 버렸다’고 했다.
희진 아빠는 중국 동포인 엄마와 지난해 12월 딸을 낳았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상 혼인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 아빠 혼자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희진 아빠는 두 달 넘게 아기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입양기관을 통한 입양도 불가능했다.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중국에 가서 중국인인 엄마 호적에 올린 뒤 귀화 신청을 하는 것. 하지만 중국에 다시 돌아가 아기의 출생신고를 할 형편이 안 되는 희진 엄마는 출생신고를 포기했다. 희진 아빠는 편지에서 “법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흘러 죄 많은 아빠가 됐다”는 말을 남겼다.
지난달 27일 자신을 17세 미혼모라고 밝힌 소녀는 생후 12일된 아들을 베이비박스에 두고 갔다. 남편은 폭력전과에 수천만원의 빚이 있는데다 일용직으로 사는 처지에 아기를 키울 수 없다고 했다. 이 소녀는 편지에서 “입양기관에서 거절당한 뒤 인터넷을 통해 불법 입양하려다 아기의 안전이 걱정돼 베이비박스를 찾았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 버려지는 아기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아기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개정 입양특례법 시행 6개월이 지나면서 아기를 키울 수 없는 부모들이 한계상황에 몰린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따르면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이래 가장 많은 아기가 이 기간에 버려졌다. 지난달에는 무려 19명이나 됐고, 이번 달에도 17일까지 15명을 기록했다. 지난해의 경우 1월 3명, 2월 7명이었다.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보면 버려진 아기 숫자가 4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 교회 이종락(59) 목사는 “법 개정으로 입양기관으로 가야 하는 아기들까지 이곳에 버려지면서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다”며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추운 겨울에 신생아들이 버려지다보니 이곳 자원봉사자들은 밤새 ‘비상 대기’를 하고 있다. 특히 주말 밤에는 초긴장 상태다. 전국에 유일한 베이비박스인 탓에 지방에 사는 미혼모들이 주말에 이곳을 찾아 아기를 버리고 가기 때문이다. 이 교회 정영란(44·여) 전도사는 “편지에는 개정 입양특례법 때문에 출생신고 문제로 입양기관이 아기를 받아주지 않아 이곳을 찾았다는 내용이 많다”며 “그런데도 법 개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법이 아니라 베이비박스 때문에 아기가 더 유기된다고 말해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와 한국입양홍보회, 프로라이프의사회, 연예인 주영훈씨 등은 1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양특례법 재개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이것도 법이라고.
대체 생각을 하고 만드는지, 발로 만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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